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매홀칼럼= 수산스님(대승원주지, 한국불교사상연구회 이사장)

현상을 떠나 본체가 존재할 수 없듯이 현상 역시 본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니, 본체가 바로 현상이고 현상이 바로 본체라고 보는 것이 불교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다. 예를 들면 눈, 얼음, 안개, 비 등 천태만상으로 현상은 다르지만, 그 각각의 다른 현상들이 물이라는 본체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는 것과 같다. 또한 인간사회에 넉넉하고 가난하고 귀하고 천한 천차만별의 현상이 나타날지라도 인간이라는 바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으며, 그렇다고 인간을 떠나서 그런 현상이 존재할 수도 없는 것과 같다.

불교에는 부처의 마음자리를 의미하는 ‘진여(眞如)’, ‘여래장(如來藏)’, ‘불성(佛性)’ 등의 용어가 있다. 그런데 현상과 본체라는 면에서 볼 때 천지만물은 어느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진여의 실체로서, 아무리 작고 미세한 물건일지라도 그 안에 전 우주를 꿰뚫는 진여의 실체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한 포기의 풀, 한 그루의 나무를 막론하고 어느 것 하나 ‘부처[진여의 본체]’가 나타난 것 아님이 없는 것이다. 우주 만유는 그 어느 하나를 주체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안에 있는 삼라만상의 일체 사물이 각각 서로 인(因)이 되고 연(緣)이 되면서 끝이 없고 다함이 없이 연기한다고 보는 것으로, 이것이 불교연기론의 기본입장이다.

이러한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너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리고 하찮은 ‘꼬리치레도롱뇽’과 ‘단양 쑥부쟁이’ 또한 예외 없는 부처인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하등동물이나 풀 한포기라고 해서 나보다 못난 것도 없이 모두다 부처의 성품을 지닌 존귀한 존재로 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불교에서의 자연이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소중하듯이, 그리스도교에서는 창조주 하느님 앞에 자연과 인간은 평등한 것으로 인간이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할 권리가 없다고 한다. 그러기에 종교를 초월해 수많은 성직자들이 그토록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의 의도는 정말로 답이 나오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그것은 틀린 것이니 바로 잡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 국민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겠는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허심탄회한 토론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순진한 생각인가 보다.

그런 소통의 방법이 없을 경우 국민이 정부의 잘못을 바로 잡을 유일한 방법은 바로 선거를 통해 표로써 심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그런 국민의 최후의 방법조차 제대로 사용할까 두려워 불통의 선거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명백히 잘못된 사업이니 그 잘못된 사업을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이고 반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권리가 있다. 그런데 지금의 공직선거법은 참으로 유치하게 유권자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어서 그저 쓴웃음만 나온다.

무엇보다 선거쟁점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하는 내용을 널리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도저히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해괴한 결정이다. 선거쟁점에 대해 논리적으로 치열하게 따져서 자신의 후보나 지지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면 무엇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라는 것인가? 성직자의 의무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포교활동이라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그런데 신자만을 대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해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해서는 안 된다니, 성직자로서의 양심을 팔라는 소리가 아닌가?

이런 와중에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공직자들이 매스컴에서 국민들에게 4대강 사업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선거법위반이 아닐까 궁금하다. 지금이 4공이나 5공시절도 아닌데, 4대강 사업에 군인들이 동원됐다는 소식에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쉴 새 없이 작업을 독려해 과로로 근로자가 숨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음과 같다고 할 것이다.

정권에 맞장뜨다가도 권력의 시녀노릇도 마다않고 결국은 스폰서니 섹검이니 해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음에도 자신들만큼 깨끗한 집단이 없다고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나, 권력의 눈치만 보고 진실에는 관심 없어 보이는 선거의 중립을 관리해야 하는 분들이나 그들의 궤변과 변신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을 위한 옛 글이 하나 떠오른다. 바로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으로, 어떤 사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는 것을 의미하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글이다. 그분들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직자이기에 진정 국민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공직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