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다 더 원통한 것은 창씨개명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1940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의 명령으로 우리조상들은 성과 이름을 모두 일본인 것처럼 바꿔야 했다. 실록 소설가 유주현씨는 말한다. 우리의 성과 이름은 단군 이래 5000년의 역사와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인데 일본인의 이름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100년 전에 호적에 올렸다는 것이다. 더욱이 장택상씨는 그들의 이름은 장난스럽게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무라야꾸소(村役所)라는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일개 서기가 장난스럽게 이름을 작명해 올렸다는 것이다.
“너는 산속에 산다고 했지. 그대로 성을 지어주겠다. 너는 야마나가(山中)라고 해.”
뒤에 서있던 사람이 “저도 같이 왔으니 똑같은 성이면 되겠습니까?”라고 하자 이 서기는 “이 사람아 성을 같이하면 어떻게 하나, 자네는 산에서 무엇을 해 먹고 사나?”라고 되물었다. 이 사내가 “밭 갈아 먹고 삽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음! 됐어. 야마다(山田)라고 해!”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또 화전민에게는 히노다(火田), 우물 위쪽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노우에(井上), 밭 한가운데 산다고 해서 다나까(田中), 밭 변두리에서 산다고 다나베(田邊)로 이름을 허투루 지어 올렸다. 한 사람이 개를 끌고 왔다. “옳지 자네는 개를 기르는 사람이구먼. 이누가이(犬養)라고 성을 짓자”라던가, 문을 닫지 않고 들어온 자에게 “음! 당신은 꼬리가 긴 사람이구먼 오나가(尾長)상이라고 하지”라는 식으로 장난스럽게 창씨가 됐다는 것이다. 이것에 따라 한국 이름을 버리고 창씨개명하라는 것이다. 아니하면 어린이 입학도 안되고 배급쌀도 안 준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이름을 바꿔야 하는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죽고 우리 후손들이 독립됐을 때 조상의 성을 찾게 해줘야 한다”고 연구했다.
전주 이씨들은 구니모도(國本). 왕손에 해당되는 이씨들은 미야모도(宮本)라고 함으로써 후손들이 이씨의 성을 찾도록 암시하는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민족과 독립정신을 담은 창씨개명은 안된다고 했다. 장택상씨는 “세상에 성을 바꾸는 놈은 개자식이니 내 이름은 이누꼬부다오(犬子 豚男)라고 하지”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광경을 본 옆 사람이 한숨을 쉬며 “세상은 말세다. 말세인 세상에 사는 나니 내 성은 스에요(未世)라고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생이 일본인 유학생들에게 창씨개명령을 내렸다. 한 일본유학생이 말했다. “우리들 조상이 지은 죄를 우리가 받아 마땅하니 이름을 지어달라”, “너는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싸움만 하니 너의 이름은 ‘도끼로 이마까’상이라고 해라. 또 옆에 있는 너는 그 도가 심하니 ‘깐이마 또까’상이라고 해라! 아! 너도 빼놓을 수 없지. 너는 아예 ‘빠께스로 피바다’상이라고 해라”라고 말이다.
창씨개명으로 인한 우리의 한은 풀리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의 겨레는 이 역사적 사실을 잊고 있으며 2세들은 창씨개명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을 뺐겼던 역사적 수치, 그것은 보훈의 대상도 아니고 그 넋도 달랠 수가 없다. 그것은 더 없는 굴욕의 치욕적 역사다. 그 한을 씻고 되받아 치는 일은 우리나라 우리 겨레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도우며 살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보훈의 달에 가슴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