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기적으론 초여름인 6월로 들어서니 급격한 기온 상승과 함께 우박 등으로 인해 비닐하우스와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다. 봄과 초여름 농작물의 작황이 피해를 입으니, 과일과 야채 가격은 오르고 서민의 삶은 기후변화 때문에 더 힘들고 고달파졌다. 누가 그랬던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살기 위해 먹는가?’라고.
‘위대한 밥상’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건강에 좋은 음식에 관한 다양한 요리법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인기가 많아 서적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주부들만 본다고 인식돼 왔던 요리 프로그램이 이제는 성별이나 연령층과 관계없는 인기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숨을 쉬는 공기마저도 오염돼 있으니, 이제 무엇을 먹을 것인가 라는 문제는 곧바로 건강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가난한 서민들은 거친 채소와 보리밥을 먹고, 부자와 양반들은 고깃국에 흰쌀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유기농으로 키운 야채와 과일이 육류보다도 더 값비싸니, 현대판 서민에게는 성장 억제제나 농약을 치지 않고 제대로 기른 농작물을 먹는 일이 이제는 사치가 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가족을 위해 더 안전하고 값이 싼 식재료를 사기 위해 주부들이 전쟁을 치르고, 채식 위주의 식당이 더 인기가 많다. 그러니 건강과 음식을 이야기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 것이 당연하다. 서점에서는 건강과 관련된 정보 책자가 인기서적 중 하나다. 배고픔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던 음식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미국의 자연주의자이자 생태주의자로 알려진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의 ‘소박한 밥상’이라는 저서가 있다. 사회주의자며 대학교수였던 남편 스콧 니어링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위해 버몬트의 시골 농가에 들어가 그야말로 ‘소박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며 저술한 농촌의 생활과 그녀의 요리법에 관한 이야기다. ‘소박한 밥상’은 어떻게 보면 요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하지 않기 위한 책이다.
특별한 조리법도 특별한 식재료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육식을 피했으며 가능한 조리하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 ‘사과든 토마토든 풀 한 포기든 먹으려면 그것을 죽여야 한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자연의 경이를 소비할까’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들은 문명화된 도시의 생활을 떠나 자급자족하며 검소하고 단순하게 삶을 살아갔다. 그녀는 요리를 위해 소비하는 많은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여 대신 창의적이고 즐거운 시간으로 사용하라고 권한다.
요즘은 제철 음식이 따로 없다. 시장에 나가면 벌써 수박과 참외가 진열대에 올라와 있다. 봄철 입맛을 유혹하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유기농 재배다, 야생이다’ 말들을 하지만 의심의 여지는 지울 수가 없다. 우리의 이미 농토와 농업용수 또한 상당한 부분 오염돼 있다.
얼마 전 서울시 하천 주변의 봄나물은 식용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시 당국의 주의가 있었다. 한강둔치, 중랑천, 안양천, 양재천, 탄천 등의 하천에서는 중금속인 카드뮴이 검출됐고, 중량천의 나물에서는 납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봄철 야외로 나와 봄나물을 뜯어 소박한 밥상을 차리려던 욕심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생물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하천의 물이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었는가 되돌아본다. 좀더 편하게 즐겁게 살기 위해 저질렀던 일들이 우리에게 소박한 밥상을 빼앗아 버렸다. 모든 것이 소비 지향적으로 변해 버린 문명의 삶이 가족과 함께 밥상에 둘러 앉아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낼 수 있는 행복한 식사 시간마저도 가져가 버렸다. 바쁜 부모들 때문에 또 간편함에 익숙해져서, 우리의 아이들은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져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소박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지만 이미 때가 늦어 버린 것이다.
보리밥에 나물 된장국을 차려도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던 행복한 밥상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위대한 밥상도 아니고 소박한 밥상도 아니다.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때가 이 시대에 다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