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맥아더

매홀칼럼= 이달순(수원대 명예교수, hellosports.net 발행인)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인민군은 서옹진반도에서 동주문진에 이르는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개시했다. 트루먼대통령의 긴급명령을 받은 일본점령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대만·필리핀·인도차이나 등의 방위에 대비하는 조치를 취했다. 27일에는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침략군으로 규정하고 유엔군 파견과 42개국의 지원을 결정했다. 때마침 소련대표는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중공이 들어와야 한다고 총회에 계속 불참하고 있었다. 그래서 거부권은 행사되지 못했다. 29일 맥아더 장군은 수원비행장에 내렸다. 60년 전의 일이다. 맥아더도 수원시민도 잊지 못할 날일지 모른다. 맥아더는 군용 지프차를 타고 선글라스와 파이프를 물고 한강으로 향했다.

패잔병과 피난민이 남하하는 모습을 보며 한강전선을 시찰했다. 맥아더 장군은 그해 1월 26일 70회 생일을 맞이한 노병이었다. 애치슨 미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아시아의 방위선에 38선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한 것은 그보다 2주 전이었다. 이 발언으로 한국전쟁은 미국의 유도전이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 뒤의 자료에서 미국은 49년 중국을 통일한 모택동 정부와의 외교관계를 위해 방위선을 남하시켰다는 점이 해명되기도 한 것이다.

어쨌든 이 발언으로 오판한 스탈린과 김일성의 합작품이 6·25침략이었다. 이 논쟁은 스탈린이 몸통이고 김일성이 깃털이라는 것이 필자의 평가다. 맥아더는 7월 31일 대만을 방문한다.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의 대만중립화정책을 변경시켜 장개석 군대의 유엔군 합류와 본토공격 등을 구상한다. 그러나 트루먼은 특사로 해리먼을 보내 맥아더의 구상을 중지시킨다. 맥아더는 이를 개탄한다.

그는 9월 12일 사세보 기지에서 맥킨리호를 타고 인천으로 와 상륙작전을 지휘했다. 9월 29일 맥아더는 탈환한 서울에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남한의 행정권을 이양한다. 10월 2일 한국군과 유엔군은 드디어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개시했다. 우리 국민은 궐기대회를 열어 북진을 결의한다. 맥아더는 이에 힘을 얻었다. 10월 15일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은 웨이크섬에서 회담을 갖는다. 대통령과 군 사령관이 첫 대면 하는 자리라 더욱이 대통령이 비행기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맥아더는 해외파견 14년간의 군 생활이었기 때문에 1945년 4월에 취임한 대통령과 상면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모습이다.

이 회담에서 맥아더는 차기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젠하워는 바보라고 말했다. 맥아더는 다시 만주폭격을 요구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3차대전의 위험성을 들며 반대한다. 맥아더는 공산권의 타파는 아직 군사력이 약한 현시점이 적격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뜻은 관철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도 맥아더를 전쟁광으로 비판하는 소리도 나왔다. 마침내 12월 중공군은 인해전술로 유엔군을 후퇴시켰다.

모택동은 스탈린이나 김일성의 간청도 있었겠지만 맥아더의 주장으로 위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1951년 서울을 재탈환했으나 4월 12일 맥아더는 트루먼에 의해 사령관직에서 해임됐다. 맥아더의 만주폭격에 대해 불안했을 것이다. 그가 떠나는 날 새벽 200만 일본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환송했다. 일본의 오늘은 실로 맥아더의 도움이고 6·25전쟁 덕분이었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미국인들의 환영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4월 19일 맥아더는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군 사령관이 미국 국회에서 퇴임연설을 한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참모습인 모양이다. 그는 외쳤다. “공산주의 위협은 세계적인 것, 아시아 유화정책으로는 유럽에서도 반공이 안된다. 대만도 다시 중국 본토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고 연설을 마쳤다. 그는 실로 52년간의 군인생활을 마친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은 그의 말이 아니고 미국군가의 후렴이다. 우리 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어…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와 엄청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1962년 맥아더는 미육군사관학교를 방문, 사열을 받고 연설하고 훈장을 받았다. 그의 생애는 이렇게 마쳤다. 그는 이승에서 6·25 60주년을 기념하며 미의회가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의결한 것을 하늘에서 지켜보았을 것이고, 우리 국회의 천안함 대북결의안 채택은 불투명한 채 참전국과 참천용사들에 대한 감사결의안만을 의결하는 모습에 그의 심경도 불편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