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본 ‘아버지’들은 모두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건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까. 무거운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조별로 모여 조 이름과 구호를 만들고 조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는 1교시가 시작되자 앞서 보였던 무뚝뚝함과 서먹함은 없어진 지 오래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경제교육을 할 때 위와 똑같이 조명, 조 구호,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있다. 모두 참여해서 주어진 시간 안에 완성을 해야 하는데 가끔 시간을 넘기거나 아예 만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 조는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다 해냈다. 크레파스를 손에 잡아 본 지 오래 됐을 텐데 마치 경제교육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처럼 웃으며 신나게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색칠을 하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이어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서 나누는 시간이 돌아왔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회상하는 사람, 병석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더 자주 찾아 봬야겠다는 사람 등 각각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슴속에 있는 말을 여기 오기 전에 어디서 해 본적이 있을까’, ‘과연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해 본적이 있을까’ 지금 모인 이곳이 어찌 보면 아버지들의 분출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지난날의 회상에 잠겨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 누가 상상했겠는가.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모인 자리에서는 ‘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론은 놀랍게도 나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모든 것(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들이 그대로 우리 자녀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아버지들이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나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들을 자녀에게 요구하고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이다.
첫날 수업이 끝나고 돌아와서 생각해 봤다. 도대체 이 세상의 아버지들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는가. 이와 관련해 수업 중에 들은 ‘아버지는 누구인가’란 글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돼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라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자식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는 ‘아버지의 중심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조 이름을 만들었다. 이 세상의 아버지가 올바로 서서 든든한 중심이 돼야 가정과 이 세상이 밝아진다는 의미로 정했다. 처음에는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도 학교라서 매주 숙제가 있다. 첫주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편지를 쓴 이후로 아버지께 편지를 쓴 적이 없는 나(나뿐만이 아니라 참석한 모든 아버지들)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숙제를 해 와서 발표를 하던 날 깜짝 놀랐다. 모두 2장 이상씩 편지를 써온 것이다.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사연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나 보다. 그동안 아버지께 말하지 못한 것이 많았나 보다.
수업을 마치면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음 주 숙제는 아이와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또 어느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학교를 ‘졸업’하면 여기 모인 많은 아버지들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래서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