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오픈 프라이스'?

골목점포들 시스템 관리 어렵고 도입비용 부담

권장소비자가격이 없어지고 유통업체들이 자체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지난 1일 시행된 이후, 골목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대형마트의 경우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시작되기 전부터 가격 경쟁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신제품을 제조하고, 시장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새로운 마케팅을 도입하고 있지만, 동네 소상인들은 갑작스럽게 바뀐 제도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격을 입력해 놓은 후 바코드를 찍는 등 전문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편의점은 그나마 충격이 덜한 모습이다.

하지만 동네 어귀에서 권장소비자가격만 보고 물건을 판매하던 소규모 슈퍼마켓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특히 이들 슈퍼마켓을 꾸리고 있는 상인 가운데 대다수는 은퇴 후 생계를 위해 가게를 차린 50대 이상 장년층으로, 전문 관리 능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컴퓨터나 포스(판매시점관리) 시스템을 다루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6일 오전 취재진이 찾은 수원역 인근 빌라 단지에 소재한 한 슈퍼마켓은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시행된 지 5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권장소비자가격이 표시된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경기 불황 탓에 재고가 쌓여있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권장소비자가격 제도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유통기간이 긴 일부 제품들을 공급사로부터 대량 주문해놨기 때문이다.

이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양모(59·여)씨는 “젊은 사람들이야 컴퓨터를 사용해 제품별로 가격 관리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지금 당장 컴퓨터나 포스 시스템을 배우기 쉽지 않을뿐더러 구입 및 대여 비용도 만만치 않아 그냥저냥 가격을 붙여놓고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대체 정부가 새로운 제도를 갑자기 도입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이 제도는 경제 활성화는 커녕 먹고 살기 어려운 상인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SSM 등 대형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유통 구조가 정형화 돼 버릴 것이라는 전망도 늘고 있다. 이로 인해 영세 상인들은 더욱 설 자리가 줄어들고, 나아가 폐업 위기로 내몰릴 것이라며 심히 우려하고 있다. 

수원시청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2)씨는 “이번 오픈 프라이스 제도는 SSM과 대형유통업체를 위한 제도로 보인다”며 “대형마트들이 제조업체를 압박하며 저가의 공급가로 담합해 버리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영세 상인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원시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소상인들과 재래시장 상인을 지원하기 위해 시설 현대화 및 마케팅 전문교육 등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는데, ‘오픈 프라이스’ 제도에 대한 내용을 교육 과정에 새롭게 포함시키도록 할 것”이라며 “전문 경영 노하우를 통해 소상공인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아직까지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시행된 지도 모르고 있는 상인들도 적지 않았다. 

같은날 오후, 팔달구 매교동에 위치한 한 편의점. 대형 체인 편의점이 아닌 탓인지 아직까지도 아이스크림을 세일해서 판매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취재진이 가게 주인에게 ‘오픈 프라이스 제도’에 대해 물어본 결과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며 “달라진 것도 없고, 그냥 평소하고 똑같이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고 덤덤히 말했다. 이어 취재진에게 오픈 프라이스가 무엇인지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