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은중경’과 불자의 효심

매홀칼럼= 수산스님(대승원 주지, (사)불교사상연구회 이사장)

정조대왕의 효심을 간직하고 있는 수원은 효원(孝園)의 도시이다. 가까운 화성시에는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의 능사(陵寺)로서 1790년 건립한 용주사가 있다.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진 용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제2교구 본사이자 효심의 본찰(本刹)로서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현륭원을 참배한 후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먹는 것을 본 정조가 비통하게 사신 것도 마음 아픈데 어찌 너희들이 괴롭히냐고 이빨로 깨물어 죽였다고 하는데,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융건릉(隆建陵) 주변에서는 송충이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하니 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하겠다. 특히 이곳에는 1796년 제작된 목판 '부모은중경'(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호)이 소장돼 있다.

“언젠가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한 무더기의 뼈를 마주하고는 그에 예배를 했다. 영문을 모르던 제자들이 까닭을 여쭙자 그 한 무더기의 뼈가 혹 전생에 부처님의 조상이었거나 여러 대에 걸쳐 부모였을지도 모르기에 예배를 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령 어떤 사람이 왼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서 수미산을 백번 천번을 돌아서 가죽이 떨쳐 뼈가 들어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가 흐르도록 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을 수 없느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흉년을 당해서 어버이를 위해 그 몸의 살을 오려내고 뼈를 갈아 티끌같이 하기를 백 천겁이 지났다 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을 수 없느니라’며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 설명하셨다.”

이는 제자들에게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 설명하고 효도를 강조한 경전으로 유명한 '부모은중경'의 내용으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라는 가사로 우리에게 익숙한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 가사의 대부분은 이 경에 실려 있는 것과 같다. 많은 종교들 중에서 불교만큼 효심을 강조한 종교도 드문 것 같다. 흔히 불교라고 하면 속세를 떠나 은둔적인 종교로 알고 있지만, 부모의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효심을 강조한 위 경전은 읽을 때마다 가슴을 찡하게 한다.

예전에 내게 강의를 들었던 부제님의 초청으로 사제서품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장엄한 의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바로 사제들의 부모님을 소개하는 순서였다. 훌륭한 사제를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지난 학기 수업 중에 스님들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어느 스님이 자신은 출가 후 집안과의 인연을 끊었기에 찾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신년 세배를 드리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스님이 드물어 매년 세배를 빼놓지 않았던 내게는 참 의외였다. 과연 출가해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출가해 스님이 되면 당분간은 여러 가지 익힐 것도 많고 수행에도 힘써야 하기에 의도적으로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출가 후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부모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부모은중경'에서 강조하신 말씀이 출가 수행자는 예외가 될 수는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혹시나 해 신부님과 목사님께 여쭤봤더니 당신들은 부모님께 세배를 드린다며 그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신다. 물론 모든 스님들이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스님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불교의 본래 뜻은 수행을 통한 깨달음에 있으며 사람들이 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중생제도라고 한다.

특히나 대승불교에서는 내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더라도 남들이 먼저 얻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중생제도 중에서도 내 가족을 제도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라도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끊을 수 없으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특히 자식의 부모에 대한 정성은 지극해야 한다. 내 아들딸에게 쏟는 사랑의 반만이라도 부모에게 쏟는다면 그분들은 참으로 감격해 하실 것이다. 내가 섬기는 분께 드리는 정성의 반만이라도 부모님께 드린다면 그분들은 참으로 만족해 하실 것이다.

올해 어머님께서 팔순을 맞으셨다. 자식된 도리로 멋진 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싶었지만 다른 분들께 부담주기 싫다고 극구 만류해서 결국 가까운 친지들과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버님께서 우리와의 인연을 놓으신 지 벌써 31년이다.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아버님이 안 계신 자리를 호탕한 장부적 기질로 지켜 오신 어머님이신데, 근래에는 육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참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아 걱정이다. 인간의 노화는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다만 조금 더 오래 건강을 지켜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머님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