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6년 W.처칠이 '철의 장막' 연설이 있자 주러대사관 근무자 G.케난이 긴 전문으로 봉쇄정책을 건의했고, 이후 냉전의 시대가 열렸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하자 러시아의 지휘로 김일성이 남침하게 돼 6ㆍ25전쟁이 발발했다. UN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16개국이 참전, 40개국의 원조를 계기로 세계는 양극화로 대립하게 된다. 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 통일을 이룩하게 될 때,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참전하게 되고, 만주폭격을 주장한 맥아더는 해임, G.케난의 노회한 정략으로 말리크의 휴전방송이 나왔고 전쟁은 멈추게 된다. 1961년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뮌헨의로 세계정세는 긴장완화의 시대로 바뀌게 된다. 이어서 양극화 시대도 다원화 시대로 바뀌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분열과 제3세계의 등장은 갈등과 대립에서 대화ㆍ협조의 시대로 진전한다. 서독의 동방정책으로 1970년 동독과 서독의 정상회담이 열리고 우리나라에서 19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이 나오게 된다.
러시아 고르비의 개방정책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자유와 공산진영의 선수들이 손에 손잡고 노래를 부르며 헤어진 뒤 공산세계는 붕괴된다. 국제정세의 영향만 받던 한국이 서울올림픽에서 세계정세를 바꿔놓은 것이다. 1990년 34개국 정상이 모여 전력감축과 불가침을 선언했다. 햇볕정책을 주창한 김대중이 김정일과 2001년 6ㆍ15 정상회담을 이끌어 냈다.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햇볕정책은 계속 이뤄졌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비판하며 70억달러를 북한에 퍼붓고도 달라진 것 없이 병력만 엄청나게 증가시켰기에 북한의 정책이 달라지지 않는 한 무조건 원조는 없다는 대북 강경정책을 펼쳤다. 1992년 UN안보 15개국 정상회담에서 군비축소를 강화하고 핵폭탄 공포 해소를 주장하면서 북한의 핵폭탄 문제가 제기됐고, 이를 위한 6자회담이 열렸으나 북한은 이에 잘 응하지 않는 가운데 2010년 3월 우리의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격침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UN은 의장성명을 통해 간접적인 천안함사건에 대한 규탄성명을 하고 아세안회의에서 같은 양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압력으로 나타난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1945년 8ㆍ15 이후 6ㆍ25전쟁이 발발하면서 우리에게는 미국을 비롯한 UN의 지지가 있었고,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제 2010년의 8ㆍ15를 앞두고 우리는 한ㆍ미ㆍ일의 해양세력과 북ㆍ중ㆍ러의 대륙세력으로 냉전시대의 대결구도가 나타나 신냉전시대가 다시 열리게 된 느낌이다. 그러나 1945년 이후와 2010년 후의 한반도 주변 군사적 대립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냉전의 시대는 이념적 대립이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군사적 패권을 다투는 지역쟁탈전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중국은 우리의 유신정권처럼 안보를 미끼로 정권강화의 통치를 하면서 산업을 발전시킨 것처럼 공산당정권의 통치를 통해 산업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출구전략으로 애를 먹고 있다. 북한은 경제는 뒷전이고 정권유지에 급급한 군사독재에만 열중하고 있다. 한편 한국, 미국, 일본은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자본주의의 변형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점은 우리가 신냉전시대에 남남갈등으로 뒤늦은 이념논쟁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중국은 간도협약이래 만주와 북한지역의 영토를 탐내고 있다. 미ㆍ일에 대항하는 군사기지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러시아가 섭섭해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대북정책은 지난 10년의 지나친 사양정책을 버리되, 당근과 채찍의 조화있는 정책을 펼치면서 김정일 후계체제의 대두에 대한 전략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