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과 보약

[건강칼럼] 김정희(한의학 박사)

살찐 사람에게 허약하다는 말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비만 치료를 목적으로 상담하는 환자에게 보약을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십중팔구는 ‘원 뜬금없는 소리를 하나?’ 하는 표정이다. 살이 찌지 않은 환자도 한약처방을 할 때 살은 안 찌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하는 마당에 비만환자에게 보약이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지만, 비만환자 대부분은 의외로 허약할 뿐만 아니라 만성 피로를 느낀다.

많은 비만 환자의 경우에서 정말 보약이 필요한 셈이다. 물론 보약을 먹는다고 살이 더 찌지는 않는다. 흔히 ‘보약은 곧 살찌는 약’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다. 보약제 중에서 대표적인 인삼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실험결과 비만에 치료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삼처럼 기를 보하는 약은(補氣藥) 우리 몸의 기혈순환을 촉진시키고 신진대사 기능을 활발히 해주기 때문이다.

비만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이른바 ‘허약한 비만 환자’를 자주 만난다. 이들은 무력감과 극심한 만성피로를 호소한다. 그런데 보약을 복용하고 싶지만 살이 찔까 무서워서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또한, 살찐 사람이 보약을 먹는다고 하면 뚱뚱한 사람이 보약을 먹는 것이 무슨 죄인마냥 주위에서는 ‘살찐 주제에 무슨 보약이야’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허약한 비만환자들은 한결같이 “이 체격에 기운이 없다고 한다면 다들 웃어요”라면서 고충을 털어놓는다.

비만은 원인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되는데 이런 환자들 기허습담증(氣虛濕痰)으로, 기가 약해서 체내에 흡수된 영양소가 대사되지 못하고 노폐물로 축적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대부분 살이 무르고 피부가 흰 경우가 많은데 흔히 ‘물살’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허증(虛症, 허약상태)의 일종인데, 전반적인 신진대사기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순환도 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내에 흡수된 영양소를 충분히 이용할 수 없어 항상 피로와 무기력증을 동반한다. 일종의 풍요 속의 빈곤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몸에서 대사기능이 떨어져 에너지를 소비하지 못하고 축적돼 살이 찌기 쉽다.

이처럼 허증을 동반한 비만은 점점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형태의 비만보다 질병가능성이 훨씬 크다. 신진대사기능이 떨어져 심한 피로와 체력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에 운동량이 점점 줄어든다. 이처럼 기허습담증에 의해서 비롯되는 비만의 경우에서는 악순환이 되기 쉽다. 심장이나 폐와 같은 내장의 기능은 국한돼 있는데, 먹여 살려야 할 부양가족(지방조직)이 늘면서 내장의 부담이 증가된다. 이로 인해서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각종 질환에 걸리기 쉽게 된다.

한약을 먹으면 무조건 살이 찐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오히려 기허증상으로 에너지를 태우는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비만이라면 이러한 방법만이 비만을 치료할 수가 있다. 같은 질환이라도 원인이 모두 다르듯이 비만도 원인에 따른 차별화된 치료만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