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후, '개천(開天)' 125년 무진(武辰 BC. 2333) 10월 3일에 나라사람들이 하늘이 내려준 사람을 추대해 임금을 삼으니, 이가 곧 단군이라 했다. 이 단군신화를 실증사적(추측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만)으로 종합정립해보고자 한다.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 일부가 에덴동산을 거쳐 북극까지 왔다. 지금의 바이칼호 이웃에 자리 잡았다. 러시아의 자치국인 브라이트민족은 우리와 DNA가 같다고 한다. 우리 조상은 거기서부터 남하했다. 그때가 BC. 7000년이다. 시베리아를 거쳐 만주지방으로 왔다. 시베리아는 새로운 벌판이라는 우리말이라 한다. 시는 '새것(New)'을 뜻한다. '시집간다', '시댁이다'고 하는 뜻도 '새것'인 것이다. '베리'는 벌판이란 말이다.
새벌판의 우리말이 러시아인들에 의해 시베리아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이 북극의 곰과 더불어 살았다든가, 그들을 따라 곰이 함께 내려온 이들이 '곰의 무리'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무리는 아프리카로부터 북상하다 중동을 통해 만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키르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는 '탱구리', '한탱구리' 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탱구리는 단군을 말하며, 한탱구리는 하나님을 뜻해 그 나라의 고고학자들은 우리 한국인을 '같은 형제의 나라, 형제민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요동으로 온 민족을 '범의 무리'라고 일컬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중앙아시아의 호랑이들과 함께 만주로 온 것이라 추리된다. 만주지역에서 '곰의 무리' 와 '범의 무리'가 함께 살며, 한민족 국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 많은 학자가 단군신화의 곰과 범은 씨족들의 명칭이라고 한다. 선주민인 범씨족과 곰씨족 등 여러 부족국 가운데 곰씨족의 세력이 우세해 종족의 수장이 됐는데, 이 곰씨족의 수장들이 이주민인 하늘신을 숭배하는 종족과 연합해 종족동맹을 형성한 것이라고 풀이된다.
범과 곰은 다북방아시아 민족에게 있어, 토템동물로 숭배되고 있었다. 일호, 일웅이 같은 국에 거주한 것을 두 씨족의 동거로, 호웅과 웅녀의 결혼을 선주민과 이주민의 동맹으로 해석한다. 다음은 단군의 문제이다. 가장 큰 고정관념 중 하나는 단군을 한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인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규원사화', '단기고사'를 비롯한 '한단고기' 의 '단군세기' 에 보면 고조선시대에는 제1대 시조 단군왕검에서 제47대 마지막 단군 고열가까지 47명의 단군의 역사가 기록돼 있으며, '한단고기'의 '북부여기'에는 시조 단군 해모수에서 6대 단군 고무서까지의 역사가 기록돼 있다.
따라서, 단군은 직책명일 뿐, 고유한 인명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허호익의 주장과 필자의 견해도 같다. 일찍이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단군은 단국의 임금으로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고 했다. 신채호도 단군다수설을 주장해 소단군과 대단군이 있었다고 한다. 한 수두에는 한 단군이 있어 강적이 침입하면 각 수두소속의 부락들이 연합해 이를 방어하고 공이 가장 많은 부락의 수두를 제일 위로 존중하며 '신두수'라고 했으니, '신'은 최상의 의미라는 것이다. 따라서, '수두의 단군은 소단군이고, 신수두의 단군은 대단군'이라는 것이다.
신채호는 왕의 명칭으로 쓰인 단군과 어떤 차별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단군이 우리 시조, 한 사람이라는 우리 관념을 벗기는 데는 가장 중요한 연구라 하겠다. 그리고 이상시는 47명의 단군의 사적에 관한 '규원사화'의 기록을 실증적으로 검토해 중국고대사서와 일치하는 부분은 열 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단군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고 역설한다. 이상시는 그의 논문에서 "'단군, 단군임검 또는 단군왕검'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박달나라의 인검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명사이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 일 수 없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후손들로 모두 '박달나라 임검'이라는 뜻으로 계속 단군이라고 불려왔다"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단군신화의 뜻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1살이 된 수원일보가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역사 바로 알기이며 사시인 민족정신 선양에 그 정신을 담고 있다. 수많은 역사 왜곡이 있었지만, 그중에 단군신화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나라 살림도 커지고 국가 위상이 높아진 만큼 더 늦기 전에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수원일보 21번째 생일날 맞는 이번 개천절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