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권익위가 작년에 전국 1300여명의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들의 부패인식도 조사를 보면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학생들에게까지 확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조사에서 청소년의 30%는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돈 많이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심지어 청소년들의 76.8%는 ‘우리 사회가 부패하다’고 보았다. 다른 예로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세계부패바로미터(GCB)를 보자. 이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 각 부문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100점 만점에 국회 20점, 정치권 17.5점, 기업 30점이다. 두 가지 연구조사에서 자라나는 청소년과 지도층의 청렴 인식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한 일간지 보도에 보면 300명 뽑는데 1000건 청탁이 쏟아졌다니 ‘누구 빽이 더 센가’ 경쟁하는 반칙사회 같다. 이같이 우리 사회 각층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인식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공직사회의 부패예방 측면에서 보면 어둠의 경로를 통한 인사청탁과 입찰에서 많이 감지된다. 최근 한 중앙부처 공무원 특채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고위직 공무원과 연고 있는 특정인물을 뽑기 위해 면접관들이 한쪽으로 점수를 몰아줬다는 게 감사결과다. 무늬만 공개채용이었다는 얘기다. 중앙 및 지방 할 것 없이 여기저기에서 불공정한 채용사례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건설공사든 자재납품이든 입찰관행의 반칙도 만만찮다. 가장 투명하다는 전자입찰을 실시하고 심사위원을 무기명 제비뽑기로 선정해도 입찰 부정 뒷말이 나돈다. 한 교수의 용감한 양심고백으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지만, 응찰자들은 심사위원으로 예상되는 전문가그룹을 통째로 관리하며 뇌물을 제공한다고 한다. 기술심사 당일 새벽에 심사예상자들의 집 앞에 있다가 그 집의 불이 일찍 켜지면 심사장에 가는 걸로 판단하고 로비에 나선다는 것이다.
인사와 입찰 비리는 다름 아닌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패거리 문화, 즉 인맥을 동원한 연줄문화에서 비롯된다. 저녁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식당가엔 온통 향우회 동창회 등 특정집단모임 천지다. 요즘에는 ‘직맥(職脈)’이라는 직장 연줄도 강세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무슨 동호회가 그리 많으냐고 의아해한다. 연줄에 의한, 연줄을 위한 사회 같다.
우수한 인재와 품질경쟁력을 평가한다는 포장 이면에는 연줄대기가 똬리를 틀고 있다. 내 뜻대로 안 되면 능력과 품질력 부족보다는 연줄 부재를 탓하며 억울해하는 게 우리 사회 아닌가. 공정하지 못한 데에 패거리 문화가 있고, 패거리 뒤엔 부정한 거래가 있다. 부정한 거래는 결국 부패행위다. 연줄문화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적어도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구별하고, 의리와 비리를 구분하며 선물과 뇌물을 걸러낼 줄 아는 사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