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청산리 대첩에 길을 묻다

이종희 (수원보훈지청 복지팀장)

가을 단풍이 산하를 수놓는 10월은 개천절, 한글날 등 국가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대한민국 국기 제정(1946년 10일 15일), 청산리 대첩(1920년 10월 21일), 안중근 장군 의거(1909년 10월 26일) 등 그 의미가 큼에도 언제 일어난 일인지 우리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10월에 집중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기반을 다진 애국선열들도 뜨거웠던 여름의 태양이 잠시 숨을 들이켜고 따사로운 햇살로 세상 만물을 풍요롭게 하는 이 가을, 10월에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선선한 계절의 아름다움을 감탄할 수 있게 하신 선조들의 애국정신을 되새기고 후세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일이 무언지 오늘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과 다짐을 하게 되는 이즈음, 자주독립의 기개를 세상에 알린 ‘청산리 대첩’을 생각하며 애국의 길을 묻는다.

청산리 대첩은 2500명의 독립군이 5만명의 일본군과 대적해서 승리한 무장독립운동 사상 가장 빛나는 전과를 올린 대첩으로 독립전사에 기록돼 있다. 1920년 만주 왕청현에 주둔하고 있던 독립군 부대 북로군정서군은 일본군의 대대적인 출병으로 말미암아 태백산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백운평에 이르러 일본군 1만명의 공격을 받게 됐으나, 김좌진·이범석·나중소 등의 지휘 아래 일본군 2200여명을 사살했다. 이어 천수평에서 1개 중대를, 마록구에서 2만여명의 일본군을 격파했다. 이후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도 이 전투에 가세했고, 이상 3회에 걸친 전투가 청산리 대첩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대패하자 독립군 근거지를 없애려고 갖은 시도를 다했다. 독립군은 물론 만주에 사는 조선인 양민 학살, 조선인 학교 방화 등은 물론이고, 간도에서는 무려 3600여 조선인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하는 간도참변을 겪기도 했다.

청산리 대첩은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불타오르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승전 이후 일본군의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수많은 선열이 참변을 당하기도 했지만, 우리 민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무장투쟁 등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마침내 1945년 독립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배로 우리의 독립이 가시화되긴 했지만, 선열들의 애국 투쟁이 없었다면 전후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로 우뚝 서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정신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내는 물론 중국, 미국 등 이역만리에서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려 오늘날 우리에게 이 땅의 참된 주인으로 살게 해 준 선조들의 열망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을 슬기롭게 이겨냈으며 지금 우리에게 직면한 내적 갈등과 외적 시련도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우리는 이미 다른 나라와 더불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기에 세계화의 시대에서도 더불어 행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세계 질서를 선도하는 선진 20개국 정상들이 우리나라에 모여 회의를 여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또 한 번의 도약이 현실이 되는 오늘, 자신의 위치에서 이웃과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곧 애국임을 자각하며 애국의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