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전쟁 걱정으로 뒤숭숭한 요즈음, 절묘한 시기에 맞춰 한미 FTA의 재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지난 6월 30일자 인터넷 뉴스를 컴퓨터에 따로 저장해 왔다. 바로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한미 FTA 협정문, 점 하나도 안 고칠 것’이라는 제목의 뉴스였다. 아마도 그 글을 읽으면서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을 짐작했나 보다. 점 하나도 고치지 않겠다는 장담이 채 6개월도 되기 전에 깨졌는데, 이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변명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12월 4일 외교통상부에서 가진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마디도 지난 그의 발언에 대해 언급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일방적이 양보가 아니라 양국 모두의 Win-Win 하는 합의 결과라는 스스로의 평가를 강조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스럽게 보인 것은 지나친 생각이었을까?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옛말도 있듯이 우리의 말이란 그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 아주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가장 기본으로 중요시하는 다섯 가지의 계율인 5계 가운데 ‘거짓말을 하지 마라’는 항목이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내뱉는 말도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한 번 하겠다고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에서의 계율은 보다 적극적인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된 말을 하는 것이 바로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망어(不妄語)’라는 ‘거짓말을 하지 마라’는 계율을 설명할 때 때로는 침묵도 악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짓말은 두말할 것도 없고, 침묵하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처럼 침묵조차 나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 된 말만을 내뱉어야 한다.
연평도의 폐허 속에서 북한 신형비밀병기인 보온병폭탄을 들어 보인 어느 정치인의 코미디 같은 모습에서 요즘 정치인들의 수준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내뱉은 말을 다른 사실로 감추려는 파렴치함이다. 이왕 벌어진 일이기에 사실대로 인정하고 잘 몰라서 실수했다고 고백했다면 그냥 넘어갈 일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으니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돼 신이 나서였을까? 그분은 여중생 납치사건으로 온 국민이 분노했던 지난 3월, 성폭력 범죄의 만연을 좌파교육의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해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또한,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과 관련해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한 것이 알려져 논란 끝에 사실상의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반복되는 부적절한 언행을 하고도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후진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자책일까?
하긴 거짓말이 이제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적인 것이 돼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맷값으로 몇 천만원을 지불하고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구타한 어느 재벌 2세는, 직원도 상습적으로 폭행해 왔고 이웃에게도 몽둥이를 휘둘렀다고 하던데 이번에도 역시 뉴스가 묻히면 재벌 노릇을 다시 하게 될 것이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특히나 재산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너무도 관대한 우리 사회가 걱정스럽다.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검찰 그리고 특히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모든 대응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내뱉은 약속은 꼭 지키는 그런 사회가 돼야 한다. 나는 성직자로서 현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너무나 죄송하고 그만큼 더 속상하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운명이나 부처님과 신이 아닌 바로 우리가 만든다고 믿기에 희망을 품고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