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홀칼럼] 북한과 중국관계 60년 전으로 회귀

이달순(수원대 명예교수·hellosports.net 발행인)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지난 11월 23일 북한의 포격으로 파괴된 연평도의 참담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6ㆍ25의 노래가 떠올랐다. 우리는 현재 60년 전의 상황과 너무나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

1950년 러시아의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마오쩌둥)이 김일성을 불러 “미국이 극동방위선을 남하했으니, 남한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남쪽 끝까지 밀렸던 우리였지만, 북한을 침략자로 규탄한 UN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압록강까지 진격해 원한의 남북통일이 목전에 도달했을 때,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들이닥쳐 38선이 휴전선으로 대치되는 꼴로 돌아가고 말았다. 1953년 휴전이 되고 클라크 UN군 사령관이 NLL을 한국 해군에 전달했다. 그리고 서해는 잠잠했다. 1999년 제1 연평해전을 일으킨 북한은 2002년 제2 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을 발발시키더니 2010년 3월 드디어 천안함을 어뢰로 기습공격해 46명을 전사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문제를 UN이 해결해주길 기대했고, 세계가 북한을 비난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이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UN은 의장성명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에 자신을 얻었는지 북한을 돕는 은혜가 무력공격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북한돕기를 중단하자, 지난 11월 23일 북한군은 해안포를 150여발 발사해 주택을 파괴하고 군인 2명, 민간인 2명과 10여명의 부상자를 내는 참극을 빚게 했다.

이번에는 천안함을 공격하던 어뢰 파편에 붙어 있던 암호문자와 해안포 포격 파편에 새겨진 암호문자가 동일한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 러시아는 북한을 옹호하지 않았지만, 중국은 여전히 북한을 비난하지 않고 남북 양국이 냉정을 잃지 말고 6자회담으로 문제를 풀어보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60년 전의 북한ㆍ중국관계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해안포 지역의 군사력과 남한의 연평도 군사력은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는 것도 6ㆍ25 당시와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 60년 전 북한은 남한보다 경제적 여건이 좋았다. 그러나 현재 남한의 경제는 세계경제의 선진국 대열에 서 있는 반면, 북한의 경제는 무기생산과 핵시설 발전과는 달리 궁핍한 살림 가운데 굶어 죽는 주민이 증대하는 형편이다. 한편, 한국의 정치는 날로 민주화로 치닫는 형국인데 반해, 북한은 세계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3대 세습 왕조라는 불명예로 세계의 비난을 받는 독재국가로 부상한 것이다. 북한은 폐쇄정책으로 국민을 속이고 있고, 군사강성국가로 국민의 불만을 억압하고 있지만, 이제 북한주민들도 정권에 대한 불만이 침묵 속에서 증대되고 있는 형편이다. 아마도 그 무마책으로 연평도 침략공격 같은 악수를 두고 있다는 해석이다. 한편, 한국은 그동안의 햇볕정책으로 평화무드에 젖어 있었으나 연평도 공격의 만행을 보고 국민 다수가 대북정책의 개혁을 원하게 됐고, 북한을 용서할 수 없는 테러집단으로 강경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단결심이 고조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11월 28일부터 펼친 한미연합해상훈련은 미7함대 소속 9만7000톤급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미해군의 이지스순양함과 이지스구축함이 주축이 돼 20여대의 공격용 전투가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이 위력은 북한의 군사기지 요새를 20분 안에 정확히 완전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어 중국과 북한이 다시 공격해올 힘을 없앨 수 있다 하겠고, 한국인은 이제 안도의 숨을 쉬게 됐다.

이제 우리는 북한을 동정 옹호하는 데서 벗어나고 있다. 다만, 북한의 무력적 응징으로 한국이 피해를 걱정해 북한의 테러위협에 끌려다니는 꼴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확전으로 서울의 파괴를 두려워하는 만큼 김정일도 서울을 공격하는 날이 그들의 제삿날이라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됐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북한의 자체붕괴만을 기다리고 앉아있는 대신 과감한 반격적 공격으로 북한을 무릎 꿇게 해야 한다는 격노한 시민들의 용기를 받아들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