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관민(觀民)

김영일(수원 서장대로타리클럽 회장)

서예(書藝)를 흔히 동양의 예술이며 글씨의 예술이라고 한다. 문자를 통해 작가의 사상과 심정 그리고 예술적 감각으로 선(線)과 형(形)을 표현하는 것이 서예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서예는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해 글 쓰는 사람의 학문이나 재능과도 같다는 뜻으로 해석됐던 것 같다.

서체가 성립되고 서법예술이 싹튼 것은 고대 중국의 은대(殷代)부터 위촉오(魏蜀吳) 삼국에 이르는 시기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그 문화를 받아들였고 일본은 우리나라를 통해 전래돼 현재는 서예라는 학문이 학자적인 연구와 덕목예술(德目藝術)로서의 인식이 매우 상승돼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서예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 ‘한석봉 선생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한호(韓濩) 선생(본명 석봉, 石蜂 1543~1605)은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에게 글을 배웠으나 10세에 조부까지 여의며 떡장수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크면서 종이가 없어 항아리 가랑잎 바윗돌 등에 손으로 물을 찍어 글 쓰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한호의 글 쓰는 솜씨에 마을 사람들이 감탄하자 어머니는 한호를 조선최고의 명필가로 만들기 위해 유명한 절로 보내 공부를 시켰는데 스승인 승려도 감탄했다. 그 후 10년(추정) 어머니가 보고 싶어 밤에 몰래 절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서 이제 공부를 많이 해서 더는 배울 게 없다고 하자 어머니는 한호를 불을 끈 어두운 방에서 자신은 떡을 썰고 한호는 붓글씨를 쓰게 했으나 어머니는 정교했고 아들의 글은 비뚤비뚤해 아들을 크게 꾸짖고 눈을 감고도 붓글씨를 잘 쓸 수 있을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 돌려보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석봉 한호는 추사 김정일과 조선시대 2대 명필가 중의 한 명이다. 필자는 명필가인 한석봉에 관해 이 글을 쓰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1583년 임금의 명으로 ‘천자문’을 본인 석봉체로 써서 책을 만들었고 오늘날까지도 그의 글이 널리 알려져 후손들이 그 책을 보면서 붓글씨를 쓰고 한자를 배우는 우리나라 역사 속의 귀한 분이고 서예라는 학문과 긴밀한 관련이 있어 적은 것이다.

수원에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제정한 수원화성과 수원화성박물관, 수원역사박물관, 한국서예박물관, 일제강점기의 관찰자료가 소장된 사운이종학사료관 등 비교적 많은 유물이 소장된 박물관 등이 있어 시민들 또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자부하며 살고 있다. 이들 중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6000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한국서예박물관 이라는 값진 박물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서예에 관심이 많으신 전직 장관을 모시고 서예박물관을 견학했다. 박물관에는 작품을 설명해 주시는 자원봉사도 있지만, 우리 일행은 영광스럽게도 박물관장이신 근당 양택동 선생께서 직접 작품 설명을 하시고 박물관 현황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근당 선생은 대한민국 최초로 서예 작품만을 전시한 한국서예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지자체장의 약속에 따라 수천여점(60억원 상당)을 수원시에 기탁을 했으며 지난 2008년 수원박물관이라고 준공은 했으나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이종학사료관, 역사박물관을 함께 수용하면서 한국 유일의 서예박물관의 독창성이 사장됐다.

한국서예박물관의 현판은 걸려 있지만, 겨우 한개 층 그것도 1/3의 공간에 150여점 정도만 전시됐을 뿐 5000여점이 지하 보관소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 일행들은 수원시 또 경기도 관계자는 물론 4명씩이나 되는 수원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방치하도록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적인 추세가 이제는 실버산업이나 관광산업을 추구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6개 대학에 서예학과가 신설되어 이미 석 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만약 수천 여점의 작품을 전시한 국내 유일의 한국서예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전국의 서예학도는 물론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찾는 관광객들이 서예박물관을 보기 위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을 왜 못하는 걸까?

요즘 국회에서 연일 새해의 예산을 가지고 여당은 합법적이라고 하고 야당은 재편성하라며 거리투쟁에 나서는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다. 복지예산, 4대강 사업 예산, 탬플스테이 예산 등 어느 하나 중요치 않은 예산이 없지만, 우리 지역 국회의원들은 전 세계인들로부터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고 후손들에게 학문과 역사의식을 심어줄 독립된 박물관 건립 예산에 대하여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무엇이 국민을 위해 우선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위정자들은 국민과 유권자의 눈이 무운 줄을 알아야 한다. 박물관장님과 차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일행 중 전직 장관님께 선물해주신 친필 휘호가 문득 생각난다. ‘관민(觀民)’ 우리가 보편적으로 아는 ‘볼관’의 뜻도 있지만 ‘올빼미관’의 뜻이 있어 올빼미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백성을 살피라는 뜻의 휘호가 담긴 액자를 받았다. 요즘 정치인들이 관민을 해야 한다. 우리 일행도 근당 선생님의 뜻을 가슴에 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