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사업자 발표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예상대로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것 같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 언론에게 준 것과, 사업자 선정에서 여당의 의도대로 된 것이나 모두, 그러면 그렇지, 예외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사업자 발표가 지나치게 정치적이었다는 비판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방송의 위력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정치일정에 대한 우려를 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정부와 여당은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 채널을 선정하는 이유를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육성’, ‘신문시장의 위기 극복’, ‘콘텐츠 산업의 활성화’, ‘광고시장의 확대’, ‘여론의 다양성 확대’ 등으로 내세웠다. 일견 살펴보면, 다채널 다미디어 시대에 종합편성 방송사업자와 보도채널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그러나 정부와 여권에서 내세운 논리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먼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육성에 관해 생각해 보자.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국내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해야만 한다. 특히 미디어 기업의 세계화는 ‘문화’라는 진입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 방송이 자국 내에서 소비되기 이전에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것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SBS의 지난해 3분기까지의 누적 적자가 230여억원이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방송시장 규모가 얼마나 열악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진출한다는 것은 지나친 꿈이 아닐까?
광고시장의 확대 또한 문제가 많은 논리이다. 대체로 한 나라의 광고 산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이어야 하는 가에는 논의가 분분하다. 그러나 대체로 그 나라의 GDP 수준에서 1% 내외가 적정수준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88올림픽을 전후로 하여 1% 내외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광고시장이 그런대로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당국의 논리로 광고시장의 규모가 확대된다면, 그 대가는 누가 지불해야 하는가? 우리는 방송을 마치 공짜로 보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광고비용은 사실상 시청자가 지불하고 있다. 광고하는 상품을 통해 그 상품에 포함된 광고비를 소비자가 간접적으로 지불함으로써 방송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광고시장 확대는 국민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행위이다.
여론의 다양성 확보라는 논리는 더욱더 해괴하다. 채널이 증가한다고 여론이 다양해진다는 논리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가? 현대사회 특히 매스 미디어 사회에서 여론은 ‘편재성’, ‘누적성’, ‘동일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채널이 많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채널이 다양성을 증가시키기 보다는 하나의 목소리만을 낸다는 것이다. 조중동 보수 신문의 방송 장악은 결국 한목소리만을 되풀이 해 동일 여론의 ‘누적성’을 높여 주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아마도 정부와 여당이 이러한 생각에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고 사업자를 선정하였다면, 이는 지나친 나만의 상상이 길 바랄 뿐이다.
일부 신문들은 방송사업자들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지원이 뒤따라한다는 여론을 벌써부터 조성하고 있다. 이것은 정책적 지원과 ‘만들어 낸’ 여론을 맞교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제 새로운 방송채널의 흥망성쇠는 시청자들의 심판대 위에 올라와 있다. 국민들은 방송에 대한 감시자로서 역할을 더욱더 공고히 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