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칼럼] 슬픈 워낭소리

김정섭(환경예술가)

지난해 11월 말 안동에서 처음 발생된 구제역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전국에서 서울, 제주 등 몇 군데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했다. 뉴스마다 각 농가를 방역하는 모습과 함께 소와 돼지들을 살처분하는 광경이 보도되고 있다. 지난해 말 이후 살처분된 가축의 수는 130만 마리를 넘어서고 있다. 이건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라 재앙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마치 중세시대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다. 중세시대의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3분의 1이상에 해당하는 인구를 사망시킬 만큼 위협적인 질병이었다. 이제 그러한 재앙이 가축에게 번지고 있다.

물론 구제역은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해가 없다지만, 소와 돼지 등과 같은 우제류에는 치명적인 제1종 가축 전염병이다. 감염 동물 자체나 배설물, 차량, 사람, 공기, 황사 등에 의해 급속히 전파되며, 치사율이 높고 치료법도 없어 구제역에 걸린 가축은 가축전염 예방법에 따라 도살, 매립, 소각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날마다 죽어나가는 소들을 향해 눈물을 짓던 주민들의 모습이 연일 방송됐다. 자식과도 같은 소들이 멀쩡한 채로 죽어나가는 모습을 손 놓고 볼 수밖에 없는 축산 농가 주민들의 마음은 말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까지 안락사 주사를 놓고 살처분 되던 소, 돼지들이 현재는 살처분용 주사제의 공급이 끊어져 산채로 생매장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저녁 뉴스에 나오던 어미돼지와 새끼들이 산채로 흙 속에 묻히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됐다. 그 어떤 장면보다도 잔인한 순간이었다.
 
지난 9일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소 사육단지인 충청북도 청원군까지 구제역이 발생됐다. 늦게나마 구제역 예방백신을 놓고 있지만, 백신의 효과는 접종 후 2주 이상은 기다려야 나타나기 때문에 백신 접종을 한 가축에게서 구제역 양성반응이 나타났다고 보고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된 것이다. 이제 구제역문제는 방역당국이나 축산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방역소를 설치하고 민·관 합동으로 방역작업에 나서고 있으나 병마(病魔 )는 좀처럼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몇 군데 남지 않은 청정지역은 외부와의 통제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겨울철 지역 축제와 행사 등도 현재 동결된 상태다.

하지만, 구제역의 발생 원인에 대한 문제는 이제 뒤로 하고서라도 앞으로의 문제가 더욱 큰일이다. 살처분 가축의 매몰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곳곳에서 살처분된 가축의 피로 오염된 지하수나 토양에 대한 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살처분으로 인한 2차 오염은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에선 매립지를 찾는 것에 고심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의 돼지 3000여마리를 매몰시킨 곳에서는 침출수가 흘러나와 인근 지역을 오염시켰고, 안동에서는 매몰지 10여곳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와 저조류에 가둔 상태다.

대부분 저조류를 미처 설치하지 못했거나 산채로 살처분하던 도중 바닥에 깐 비닐이 가축에 의해 훼손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날씨가 추운 겨울엔 문제가 안 되겠지만, 날씨가 풀려 여름이 돼 비가 오거나 하면 매몰지의 유실 가능성도 커진다. 이 침출수는 그대로 지하수로 흘러들어 가는 현상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이는 또 하나의 환경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재앙은 현재처럼 가축에게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방역인력도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작업의 어려움도 어려움이거니와 가축을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오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도 현장 인력들에게 작업을 회피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근 한달을 집에 가지 못하고 작업에 매달린 방역요원들에겐 집에 못 가는 어려움이나 육체적인 피곤함 보다도 생매장시키는 동물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이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축산 농가도 축산 농가대로 정신적·경제적인 피해보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전국 가축농가의 존립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동시에 구제역 확산에 대한 원인조사에 있어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너무나 급한 나머지 보이는 불만 끄겠다는 심정으로 이뤄지는 방역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임이 분명하다.

농사를 짓던 우리 민족과 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져 있다. 경운기가 나타나고 한참 후까지도 소는 우리 농민들에게 있어서 가축이며 가족 일부였다. 잔칫날 닭이나 돼지를 잡아 기쁨을 나누기는 해도 함부로 소를 잡거나 하지 않았다. 단옷날 씨름장사에게 주는 상도 소였으며, 서울로 유학을 간 자식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소를 팔던 이들에게 소는 가족을 지켜주는 재산 일부이기도 했다. 대학을 일컬어 ‘상아탑(象牙塔)’이라 부르던 것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빗대어 부르던 것도 이런 유래에서 나왔다. 그만큼 소와 우리 민족과는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주인의 앞에서 밭을 갈며 자유롭게 풀을 뜯던 한가로운 소들의 모습을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좁디좁은 사육장에서 인간이 만든 배합사료를 먹고 항생제 주사를 맞으며 살만 찌우다가 도살장에 가서 생을 마감하는 단지 식육용으로서의 생을 마감하던 우리 소들이 이젠 누구의 잘못도 가리지 못한 채 슬픈 비명 속에서 생매장당하고 있다. 슬픈 워낭소리가 전국을 메아리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