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느 씁쓸한 기부

노병성(협성대학교 광고홍보영상학과 교수·언론학 박사)

워런 버핏 하면 ‘현명한 투자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오바마의 현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검소한 생활이 익히 보도된 바이다. 그런가 하면, 빌 게이츠 역시 세계최고의 갑부 반열에 오른 사람으로 뭇사람으로 칭송을 받는 인물이다. 이들은, 세계의 최고 갑부라는 것 외에도, 세계적인 기부운동을 전개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회에서 부를 이룬 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한다는 이들의 철학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내어, 이에 동참하는 글로벌 거부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천문학적인 수준의 부는 우리네 보통의 서민들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액수임에는 틀림없을 뿐 아니라, 그 기부액도 역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모 연예인이 자기 수입을 모두 기부해 통장 잔액이 ‘0’원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들 모두 훈훈한 감동이다.

며칠 전 김영삼 전직 대통령이 자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집도 다 내놓았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도 일절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죽으면 끝나는 것이고 영원히 못 산다”는 게 사회 환원의 이유였다고 한다. 얼핏 보면, 참으로 훌륭한 대통령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내를 살펴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김 전 대통령 측은 2001년 생가를 거제시에 기부했다고 한다. 거제시가 어떠한 계획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대통령 성역화 사업(?)에 사용될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이번에 기부하게 될 상도동 자택과 경남 거제도 땅 등 50여억원은 ‘김영삼 민주센터’에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민주센터는 김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 건립, 전시 및 홍보 사업, 연구교육 사업 등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별해 보건대, 전 재산이 자신의 존재를 영원히 후대에 알리거나, 자신의 미화사업에 사용되는데 기부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기부이며 사회 환원일까? 더욱이 김영삼 민주센터가 최근 한 경제단체에 2014년까지 필요한 총사업비 중 일부를 지원·요청한 것이 보도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행위는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단체의 모금행위에 앞 장선 느낌을 주고 있어 더 우울하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특히 자신의 유형적 혹은 무형적 이익을 바라고 기부하는 행위는 암묵적 거래행위이다. 기부를 둘러싼 비윤리적 행위는 개인의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 대 사회적인 문제를 낳고 있다는데서 그 심각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젠가부터 기부의 냉소주의가 만연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기부단체의 임원들이 기부금을 자신들의 품위유지와 일상경비로 흥청망청 사용한 것이 보도되면서, 기부에 대한 불신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작년 말 각 사회단체에 기부된 모금액이 그 전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에 전직 대통령의 석연치 않은 재산의 사회 환원은 불신풍조를 넘어선 기부의 냉소주의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왜냐하면, 냉소주의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를 더욱더 각박하게 만들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냉소주의에 빠지기에는 아직 이른 느낌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작지만 아름다운 기부가 많다. 어느 김밥 할머니의 장학금 쾌척이라든지 스포츠 기부, 투자 기부 등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의 기부선행이 있어, 세상은 따듯하다. 특히 요즘 청장년층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싸이월드 등 SNS를 통해 기부하는 소위 ‘디지털 기부문화’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처럼, 기부는 나를 홍보하거나 대가를 바라는 행위가 아니다. 냉소주의를 물리치고 올바른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지도층 인사의 올바른 가치관과 이에 바탕을 둔 행동이 무엇보다도 먼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