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톺아보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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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톺아보기 (24)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2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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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11월 20일에 보부상들은 의기양양하여 그들의 영수인 과천군수 길영수를 호위하면서 종로로 시위행진을 하였다. 행렬이 종로에 도착하자 길영수는 장군처럼 정좌하였고 보부상들이 물푸레나무 몽둥이를 좌우에 나열하여 위세 당당하였다.

이 날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인화문 앞에는 만민공동회가 농성하고, 종로에서는 황국협회의 시위가 벌어져 위기가 고조되었다. 각국 공사관들도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대비하기에 급급하였다.

덕수궁 중화문(중화전과 중화문을 정면으로하여 인화문이 있었다.) (사진=김세곤)
덕수궁 중화문(중화전과 중화문을 정면으로하여 인화문이 있었다.) (사진=김세곤)

마침내 11월 21일 새벽에 보부상들이 만민공동회 농성장을 습격했다. 종로에서 집회를 연 보부상들은 홍종우가 등단하여 만민공동회 회장 고영근을 규탄하는 격렬한 선동 연설을 한 다음 “일제히 인화문 앞에 진격하여 만민공동회를 쳐부수자.”고 외쳤다.

『춘향전』을 불어로 번역한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1850∽1913)는 1893년 에 파리 체류를 마치고 일본에 도착했다. 홍종우는 고종의 밀명으로 김옥균과 박영효의 암살을 계획하고 도쿄에 온 이일직으로부터 김옥균 암살을 제의받았다. 이에 홍종우는 김옥균을 상하이로 유인, 총을 쏴 살해하였다. 1894년 4월 김옥균의 시체를 가지고 귀국한 홍종우는 고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고, 김옥균의 시체는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왕당파인 그는 홍문관 교리, 비서승 등을 역임했다.

홍종우의 연설에 2천여 명의 보부상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면서 2대로 나누어 길영수와 홍종우의 지휘 아래 경운궁 인화문 앞에서 농성 중인 만민공동회를 습격했다.

이때 시위대 대장 김명제와 경무사는 고종의 칙령을 비밀리에 받아 병정과 순검들로 하여금 보부상들이 만민공동회를 향해 진격하는 길을 열어주도록 하였다.

날이 채 밝지 않은 새벽에 찬 바람까지 불어 닥치고 있는데, 연일 철야한 만민들은 물푸레나무 몽둥이로 무장한 보부상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항할 도리가 없었다. 몽둥이에 난타당한 만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몽둥이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쫓기어 부상자가 부지기수로 나왔으며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양홍묵 등 청년들은 보부상에 대항을 시도하다가 배재학당 안으로 쫓겨 들어갔으며, 일부 만민들은 다급하여 바로 옆인 독일영사관 등 외국공관으로 담을 넘어 피신하였다.

보부상들의 만민공동회 기습이 승리로 끝나자, 궁중에서는 백반과 육탕을 보내어 보부상들을 격려하였다.

고종과 수구파는 이것으로 만민공동회는 완전히 해산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수구파와 보부상들의 승리는 잠깐이었다. 분노한 시민들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보부상들이 인화문 앞의 만민들을 습격했다는 소식이 서울 안에 퍼지자 격분한 시민들은 아침부터 정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상인들까지도 모두 철시하고 모여들어 정동에 모인 시민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격분한 시민들은 작은 돌멩이들을 주워다가 성처럼 쌓아놓고 보부상들이 쳐들어오면 타살하려고 기다렸다. 이 분위기는 마치 1789년 프랑스 혁명 전야와 같았다.

이런 서울 시민들의 봉기에 놀란 보부상들은 사태가 완전히 역전되었음을 느끼고 오후 2시쯤 병정들의 호위 아래 도망쳤다. 이러자 시민들은 돌을 던지며 보부상들을 추격하였고, 보부상들은 돈의문 밖에 있는 전 경기감영 건물에 쫓겨 도망가서 겨우 한숨을 돌렸다.

이후 시민들은 다시 종로에 모여 대규모의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시민들은 수구파와 황국협회를 격렬히 규탄하였다. 양홍묵 등이 등단하여 정부와 보부상이 야합해서 만민을 습격했다고 연설하였다. 다른 시민들도 다투어 올라가 정부와 수구파에 대한 성토 연설을 하였다.

서울 시민들이 봉기하여 보부상들이 쫓겨갔으며, 만민들이 더 큰 규모로 종로에 모였다는 보고를 받은 고종과 수구파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고종은 경무사와 한성판윤을 만민공동회에 보내어 시민들을 회유하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경무사를 포위하고 위협하여 경무사는 급히 피신했다.

이 때 아침 일찍 서울 시내에 나무를 팔러온 나무장수들이 나무를 팔다가 만민공동회의 피습당한 소식을 듣고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이기동·조병식·민종묵·홍종우·길영수·유기환·윤용선·민영기 등의 가옥을 파괴했고, 보부상들의 도가인 신의상무소(信義商務所)도 부숴버렸다.

만민들은 시내 곳곳에다 수구파 대신들과 보부상을 규탄하는 벽보를 붙였다. 서울 시민들은 다투어 의연금과 의연품을 보내어 종로에서 철야 하는 만민들을 성원하였다.

< 참고문헌 >

o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1 열강의 이권 침탈과 독립협회, 탐구당,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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