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더불어 살면서…

한창호(온사랑교회 목사)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고대 철학자들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지만, 그전에 창조주가 사람을 함께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최초의 사람인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겨서 돕는 배필을 창조하셨다. 그 후로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가 됐다.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불행하기도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영향으로 행복과 불행이 갈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만나면 삶의 에너지를 공급받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전자의 경우 이들과 더불어 살아갈 때면 기쁘고, 행복하다. 그런 이들을 만날 때면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과 더불어 살게 하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평생을 이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게 해 주십시오.” 욕심 어린 기도이지만 이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그런 사람의 한 예로 성경에 보면 요셉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요셉은 집안에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일생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기쁨이며 축복인 동시에 기대치였다. 그런 요셉도 애굽(이집트)의 종으로 팔려가서 보디발이라는 장군의 집에서 종이 돼 약 10년 정도 시련을 격을 때가 있었다. 요셉은 삶을 비관하기보다 주인에게 늘 기쁨과 행복이 됐다.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다. 그럼에도,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함께 갇혀 있던 바로(이집트의 왕)의 관원 두 사람의 꿈을 해몽해 줬다. 그 중 한 관원이 복직 후, 계시적인 꿈을 꾼 바로(이집트와 왕)의 꿈을 해석하는 일에 요셉을 천거하게 된다. 요셉은 그 꿈을 해결함과 더불어 애굽의 총리가 돼 전에 없는 국가적 위기를 잘 대비해 애굽의 왕과 온 백성 그리고 이웃나라에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됐다.

우리는 요셉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요셉처럼 그렇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가져본다. 그리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서 그러한 요셉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행복한 생각을 생각해 본다.

하지만,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하고 억울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가 되는 사람들이다. 마치 요셉의 이복형들이 그를 괴롭히고 구덩이에 몰아넣고 심지어는 팔아버린 것처럼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고 비판하며 인격을 무시하고 인간을 이익의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과 살아간다.

심지어는 보디발의 아내 누명을 쓴 요셉처럼 기막힌 억울함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때는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상황을 보며 우리가 불평하며 비판하기에 앞서 더불어 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에게 선행돼야 할 일이 있다. 혹시 나는 요셉의 형들, 보디발의 아내와 보디발, 그리고 이기적인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성찰해 보는 것이다.
 
우리의 자신이 그랬으면 좋겠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요셉처럼 언제나 모든 일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됐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