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이전의 혁명 혹은 반란 등은 대개 입에서 입으로 정보가 전달돼 이뤄졌다. 하지만, 전단지나 벽보 등도 주요 수단으로 이용됐다. 조선시대에 ‘방(榜)’이 이에 해당한다. 주요 정보를 쓴 방문(榜文)을 저잣거리에 붙여서 사람들은 불러 모았다. 그래서 조선왕조에서는 작성자 미상의 방은 엄격하게 규제했다.
현대화의 길목에서 발생한 5·16 군사 쿠데타의 경우 인쇄된 삐라가 주요 수단이었다. 당시 박정희 소장과 젊은 군인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는 서울 입성과 함께 미리 준비한 삐라가 서울시내에 공중 살포됨으로써 완성됐다. 2008년 5월 서울의 촛불시위에서는 인터넷이 주요 수단이었다. 다음의 ‘아고라’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8세기 말에 유럽에서 발생한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은 사실상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에 힘입은 서적의 보급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책이 혁명의 기저적 원인이었던 셈이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됐다. 당시 베를린 장벽을 무너트린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텔레비전이었다. 동독의 사람들이 서독의 텔레비전을 청취할 수 있어서 서독의 발전상을 볼 수 있었고, 이것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 1991년 구소련에서는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했다. 고르바초프가 휴가 간 사이에 벌어졌다. 이에 대항해 모스크바에서는 대규모 시민집회가 발생했다. 이때 보리스 옐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당시 사람들을 집객한 주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팩스였다.
최근 중동에서는 ‘재스민 혁명’이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튀니지의 혁명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튀니지의 국민과 국민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었고, 세계와 연결해 주는 미디어로서 역할을 했다. 이때 당시 튀니지의 혁명은 방송으로 보도되지 않아, SNS의 위력이 여실히 증명됐다. 그런가 하면,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에서도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한 SNS의 역할이 거의 결정적이었다. 무바라크 정권을 붕괴시키는데 페이스북이 동 시간대에 수많은 사람에게 사실을 전달해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인터넷과 SNS가 총칼보다 더 무서운 세상이 되자, 독재국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중국은 군중집회가 이들 매체를 통해 전파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검열을 했고, 중동의 여타 국가들도 집안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국민의 삶 자체가 어려운 가운데 있다. 게다가 3대 세습이라는 정치적 부담까지 가지고 있다. 언제 민중봉기가 발생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순간들의 연속이다.
이러다 보니 북한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을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고 한다. 남한의 사회단체들은 인쇄된 삐라를 보내는 등 구시대적 방법을 통해 북한의 체제붕괴를 유도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체제변화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라디오를 통한 북한의 변화 가능성이 엿보여 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국민에게 주파수를 고정한 라디오를 보급한다. 그러나 중국과 남한을 통해 들어간 라디오는 주파수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북한 주민의 의식을 일깨울 수 있다고 한다. 강력한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한 북한의 체제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라디오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