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용 불을 사용해야 하는 점심시간 대에 발생한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화염에 싸이자 조선인들이 고의적인 방화로 인한 화재로 사태를 둔갑시켰던 끔찍한 나라가 일본이다. 민간인들의 유언비어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일본 정보기관이 엄청난 지진 피해로 대혼란에 빠진 자국민들의 통합 수단으로 “불바다의 방화범들은 다름 아닌 조선인들이니 조선인을 잡으면 누구든 죽여도 좋다”고 지령을 내린 것이다.
재판은커녕 수사도 필요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 중 아무나 세워서 일본어 발음인 ‘가기구게고’를 시켜보아 본토 발음이 나지 않으면 그냥 잡아가거나 심지어 현장 참살을 했다. ‘오직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제역에 걸린 가축보다 못한 수만 명이 죽음을 맞아야 했다.
죽어간 조선인의 대부분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거나 일본인들에게 속아서 현해탄을 건넌 사람들이다.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로 참담한 최후를 코앞에 둔 시점인 1945년 8월 8일, 일본은 스탈린에게 한반도 38선 이북에 대한 신속접수를 제안했었다.
미군의 한반도 진주를 내용으로 하는 미국대통령의 일반명령1호가 시달되기 이틀 전인 8월 13일 소련군은 일본의 적극적 협조 속에 북한 전역에 접수 작전을 종료했다. 수백 년의 역사 동안 하나였던 금수강산을 미·소 냉전 대국 군대가 분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독립을 이뤘다 할 수 없다. 남북은 서로 다른 군대를 가지게 될 것이고, 강대국 간 대리전적 성격의 동족상쟁의 비극은 볼 보듯 뻔하다. 일본이 남북 분단 상황을 집요하게 획책한 것은 한반도에서의 이러한 전쟁만이 일본의 전쟁 피해 복구와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이 하나가 돼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 독립운동이다.”
이렇게 외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현역 중위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한 지 딱 1년 후인 1950년 6월 25일 백범의 경고와 유언은 현실로 나타났다. ‘6·25’를 발판 삼아 일본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일본의 야만적 역사의 창에 비친 한반도와 한국인들은 그 태생적 우월성으로 인해 늘 질시의 대상이었다. 일본인들은 자국민들의 단합을 위해 필요한 경우는 물론 자연재난으로 인해 이반된 민심 수습을 위한 비책으로 지난 수백 년 동안 한반도를 희생양으로 삼아 온 것이다.
지난달 11일 동일본 지역에 관동대지진의 30배에 달하는 대지진과 1000년만의 거대한 쓰나미가 몰아닥쳤다. 인류애 차원에서 심심한 애도와 위로를 표해야 할 일이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구조단이 파견됐고, 민간인들의 성금도 행렬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일본은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교과서 발간을 정부 차원에서 공언함은 물론 “독도 점령을 위한 미사일 사용”을 시사하는 망언이 현직 일본 외상의 입에서 나왔다. 공교롭게 이 자는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의 외 5대손이다.
우려했던 “일본 열도의 위기는 한반도를 통해 극복한다”는 일본인들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또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변함이 없는 일본을 극복할 방도는 없는가? 일본 열도를 경악시킨바 있는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투혼 기반이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정신’으로 남북은 물론 해내외 민족성원이 대통합하면 된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 공포일인 오늘(13일) 국시(國是)로 선택한바 있는 ‘삼균주의적 통합주의’를 21세기 ‘극일방도’로 재조명해 갈 것을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