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향기의 미학

한창호(온사랑교회 목사)

사월이 되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이 활짝 피어 자신을 뽐내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꽃들을 보거나 향기를 맡으면 사람들의 지치고 상한 마음들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 그 향기를 맡는 것을 즐긴다.

얼마 전에 터키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특히 옛 빌립보지역을 방문했는데 무너진 돌 더미 사이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활짝 피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있었다. 그중에 유난히 필자의 시선을 머물게 한 꽃은 진한 붉은색을 띤 백합화였다. 얼마나 곱고 아름다운지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마음이 얼마나 평안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여행에 지친 몸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만개한 꽃들의 아주 진한 향기에 묻혀 잠시 행복에 젖어 있을 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사람은 왜 아름다운 꽃처럼 진한 향기를 발할 수는 없는 것일까? 서로 뿜어내는 향기가 우릴 행복하게 할 수는 없을까?

사람은 원래 가치 있는 존재였다. 세상의 어느 창조물보다 아름답고, 꽃의 향기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고 행복을 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그 아름다움과 향기가 효력을 잃어버리게 됐다. 이제 이국의 땅에서 핀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보며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회복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
 
첫째, 원래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 속에는 창조주의 ‘image’가 온전하진 않지만 남아 있다. 바로 그 ‘image’ 속의 본질적 깨끗한 양심, 지극히 순수함 그 자체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혼탁한 시대적 기류와 세속적 가치관의 홍수 속에서도 타인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고 소신을 지켜나가며 원래의 인간다움을 유지했으면 한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보며 모두 갈채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예측대로 세상은 어리석다고 바보 같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보며 시샘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기질이 아닌가? 그런 시샘을 받을 만한 삶을 산다는 건 우리가 바로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둘째, 포기하지 말고 감동을 주는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들에 핀 꽃을 보라. 그것은 비바람을 이겨낸 결정체이다. 추위와 더위를 잘 견디며 이겨낸 흔적이 있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고난의 짙은 그늘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많은 시련과 실패 고난의 바람을 통해 출생하는 것이다.

최근에 카이스트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며 한 사람의 부모로 함께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사선 앞에 설 수밖에 없었던 저들의 고민과 갈등에 구조적 악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좀 더 견디고 꽃을 피웠으면 하는 때늦은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도 살면서 누구나 시련을 만나고 한 번쯤은 극단적인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쩌면 비인간적인 시대에 서로 감동을 주는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셋째, 상상을 넘어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자. 꽃은 그 꽃 자체로 의미가 있다가 보다는 그 꽃의 실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실체이기에 경험하는 이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아닌 실체 하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그 아름다움은 좁게는 가정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웃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에게는 삶의 향기가 있는가?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기대하기 전에 먼저 내가 나만이 가진 그 향기를 발해 행복을 발하는 존재가 돼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