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주식시장의 반응을 언론은 다시 재빨리 물어 날랐다. “배용준, 막걸리주 폭등에 하룻새 15억 대박”, “막걸리 항암효과 소식, 주식 춤추게 했다 ‘국순당 보해양조 대박’”이라는 기사 제목이 뽑혔다. 실제 4월 14일 일찍 나온 석간 때문에 14일 오후부터 막걸리 관련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해 금요일인 15일 오전 9시27분에는 국순당 주식 가격이 제한폭인 1만2900원까지 올라, 전일 대비 14.67%(1,650원)나 상승했다. 그리고 최근 ‘순희’라는 막걸리를 내놓은 보해양조 주가 역시 15일 오전 9시 27분 기준 전일 대비 15%(1800원) 상승한 1만3800원에 거래 중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막걸리가 주식시장을 움직이다니, 주식을 오래 한 사람들은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지난해 막걸리 바람으로 국순당 주가가 오르고, 막걸리양조장을 인수한 오리온 계열사인 미디어플렉스의 주가가 들썩인 적이 있지만, 이제는 막걸리 테마주라는 게 주식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물론 ‘파네졸’이라는 항암물질 발견의 소식은 곧바로 주말 막걸리 시장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 막걸리 유통을 하는 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일요일인데 막걸리가 다 떨어져 배달할 곳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필자 또한 동네 대형 슈퍼에 나가봤더니 토요일(4월 16일)에 막걸리 7짝(20병에 한짝)이 모두 나가 일요일에 팔 물건이 없다고 했다.
이는 도심 편의점으로까지 확대됐다. ‘세븐일레븐’과 ‘바이더웨이’는 막걸리의 항암효과 연구 결과가 발표된 다음 날인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막걸리 매출을 분석한 결과, 전주 대비 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막걸리 안주류 상품도 150%, 막걸리 안주로 궁합이 딱 맞는 두부와 두부김치 매출도 덩달아 26.2% 신장했다’는 보고를 내놓았다.
특히, 막걸리가 많이 팔리는 등산로, 행락지 등 유원지 인근 점포 40여곳의 경우, 막걸리 판매가 62.8%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고작 해야 1200~1300원짜리 막걸리가 수십억의 가치 증식과 편의점의 매출과 안주류의 매출 증대까지 불러오다니, 막걸리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했던가 경이로울 따름이다.
사실 막걸리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과거의 옷을 벗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와인처럼 행세할까. 와인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맥주를 벤치마킹할까’도 고민한 적이 있었다. 와인과 맥주와 일본 청주가 먼저 세계화의 길을 갔고, 현대 과학문명의 혜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네졸이라는 항암물질의 발견으로 현대 과학의 햇살 한줄기가 막걸리에도 쏟아진 것이다. 막걸리는 ‘고리타분하다’, ‘누룩 잡내가 난다’, ‘숙취 성분이 있다’는 부정적인 요소에 속수무책으로 질타받아야 했던 게 막걸리의 지난날이었다.
모든 물질에는 단점이 있고, 장점도 있다. 모든 인간에게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듯이 말이다. 장점을 일으켜 세워 이를 강화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면 약점도 극복할 수 있다. 약점을 숨기는 게 아니라 약점을 극복하고, 막걸리의 장점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오늘을 사는 현대인과 현대 과학의 몫이다.
우리 조상은 수천년 동안 막걸리를 즐기면서 한국의 문화를 일궈오고, 쌀 문명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쌀로 만든 저알코올 음료를 우리에게 줬다. 이에 대해서 과학적인 해석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해왔는데, 발효주인 와인과 청주에 견주어 파네졸이라는 항암물질이 10배~25배가량 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다니 식품과학이 막걸리에 단비와 같은 선물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파네졸의 성분은 아주 미미하다. 어디 볼까. 파네졸은 5~7mg/ℓ 정도의 미량으로도 항암 항종양 성질을 가진 물질로 밝혀져 있다. 그런데 포도주나 맥주에는 파네졸이 15~20ppb가 들어 있는데, 막걸리에는 10~25배나 많은 150~500ppb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때 ppb(parts-per billion)는 10억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무게로 달 수 없는 꿈의 질량만큼이나 가볍다.
하지만, 이것이 지닌 의미는 무시하고 넘어갈 게 아니다. 우리는 이 좌표를 얻어서, 이제 비로소 ‘와인에 항암물질 폴리페놀이 있다면 막걸리에는 파네졸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과학이 와인에 베풀었던 찬사를 막걸리가 더는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나아가 와인에 전용했던 ‘소믈리에’나 ‘마리아주’라는 외래식 표현 대신 우리 문화를 함께 풀어낼 수 있는 막걸리 해설사나 우리 음식과 궁합을 맞춘 막걸리 안주를 얘기하는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막걸리에 대해 지금까지는 과학적인 저주를 퍼부었다면, 이제는 과학을 통해 막걸리의 장점을 재해석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막걸리 문화의 주도권을 우리가 선도해나가야 한다. 막걸리의 주인은 그냥 한국인이 아니라, 막걸리를 가장 즐기는 한국인이고 세계인이다. 음식과 문화는 그것을 가장 아끼고 즐기는 자가 주인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막걸리와 전통술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재해석이 거듭 필요하다. 막걸리가 명주가 되는 것은 단순히 양조업자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우리도 첨단 과학 장비들로 무장하고, 100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주류총합연구소에 비견할 만한 ‘한국술연구소’를 설립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