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기 때문에 당시 전문가들의 상당수는 김일성의 사망이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로 간주했으나 북한 내부 및 중국 등에서는 그의 사망원인을 두고 온갖 억측이나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일성이 당시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을 만나 직접 협상하고 같은 해 7월로 예정된 분단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의 준비를 위해 묘향산 촌대소에서 그 준비를 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근거로 ‘김일성의 사망원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 등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런 여러 가지 ‘설’은 북한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를 예외로 할 경우 크게 ‘김정일에 의한 모해설’, ‘김정일과의 언쟁에 의한 심장마비설’, ‘격무 및 전우사망에 의한 충격설’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17년 전에 조성됐던 북한 내부의 상황 그리고 남북한 관계를 비롯한 한반도를 둘러싼 제반 상황 등은 현재 상황과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유사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지난 1994년의 상황은 비록 정도와 규모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북한의 식량난 등 경제적 상황과 북한이 직면하고 있던 외교적 고립 남북관계의 경색국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유사 이래 최대의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닌게아니라 지금 북한이 처한 상황은 과거 17년 전과 대동소이한 것이다. 식량난을 비롯한 에너지난 위화난 등 이른바 ‘3난’은 과거 ‘고난의 행로시대’보다 더한 ‘제2의 고난의 행로’를 예고할 정도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1993년 핵확산 금지조약 탈퇴 이후 가해진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 움직임은 2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인한 국제제재의 정도가 더욱 가중되는 가운데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던 상황보다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어 밤중시 천명한 6자회담 참가의지에도 관련국들 반응은 기대 이하로 나타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일성 사망 직후 오진우, 최광, 김광진 등 이른바 ‘항일혁명 1세대’들의 잇따른 사망을 연상케 할 만큼 김정일이 한동안 믿고 의지했던 김용순 조명록 리제강, 리용철, 박남기, 류경 등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명을 달리했였다. 특히 김일성이 박헌영을 비롯한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을 이른바 종파사건 등으로 몰아 숙청한 것을 본받아 김정일은 자신이 진두지휘하며 자행한 ‘심화조사건’ 등의 여파가 김정은에게로 권력 승계가 완건하게 이뤄질 경우 또 다른 형태로 재연될 위험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지금 김정일은 ‘목하 고민증’에 있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일성의 지병이나 김정일의 병도 모두 심장과 심장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는 것 일지인데 스트레스로 인해 심근경색과 심장쇼크로 발생하는 것이기에 후계세습으로 인한 여러 가지 고민이, 그리고 그 정리를 위한 부적절한 처사가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김일성 사망상황을 지금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김일성 때보다 현 북한은 남한의 경제와 국제적 위상이 드높이 올라가는 것을 북한 주민이 상세히 알고 있다는 점과 평양시내에까지 반정부구호가 등장하고 있고 국제적으로 반정부데모가 물결을 일으키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데모 진압 무기를 수입하는 형편이라면 언제 어떠한 형태로 반정부세력이 폭발할는지 예측하기도 어렵지만 그러한 사태가 성공을 거두지 못할지라도 병약한 김정일에 줄 심적 타격은 무척 크리라고 본다. 그리고 후계자문제도 김정남, 김평일, 김정은 등의 복잡하게 얽힌 골육상쟁과 권력투쟁의 불길이 어느 쪽으로 번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