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나눔 그리고 행복

김영일(수원 서장대로타리클럽 회장)

지난 22일 오후 6시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에 위치한 ‘평화의 모후원(양로원)’에서 춤과 노래가 함께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비록 아마추어 가수이긴 하지만 두 분의 자원봉사 가수의 노래에 맞춰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박수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시면서 즐겁고 행복한 가든파티가 열렸다. 수녀님 일곱 분과 자원봉사자들이 무의탁 어르신 66분을 임종 시까지 돌봐주시는 이곳 평화의 모후원은 운영비 등을 수녀님들이 자체 조달하기 때문에 여름에 어르신들이 쉬실 정자가 필요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전해 듣고 뜻을 같이한 200여명의 정성을 모아 정자를 세우게 됐다.

함께 자리를 하셨던 할머니 한분이 “자식이 있어도 한번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낯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이렇게 편히 쉴 수 있게 99칸짜리 저택만큼이나 멋진 정자를 만들어줘 고맙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연실 목례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참석한 후원자들도 가슴이 뭉클했다.

33세에 백만장자가 되고 10년 뒤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했으며 53세에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던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라는 사람은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나눔과 베풂의 전도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가 55세 때 불치병으로 1년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최후 검진을 위해 병원로비를 지나다 문득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적힌 액자를 보았다. 그 글을 보는 순간 그는 마음속에 전율이 생기고 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 된다는 병원 관계자와 입원을 시켜달라고 애원하며 다투는 소리를 듣고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했는지 모르게 했다.

얼마 후 도움을 준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록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훗날 그의 자서전에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라고 기술했다. 그 후 그는 나눔의 삶을 작정했으며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그의 병도 사라졌고 그 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에 힘썼다고 한다.

우리 주위에는 병들고 가난하고 어려운 많은 사람이 있다. 또한 이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 봉사하는 고마운 분들도 많이 있다. 이번 ‘양로원 정자세우기’를 마치면서 200여 후원자를 모집하는 동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한 번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사람이 일 만원의 후원으로 몇천만원 이상의 행복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 진정한 보람을 느꼈다.

요즈음 중 고등학생들에게 봉사시산 점수가 의무적으로 책정돼 있다. 어려서부터 봉사를 생활화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아이들 스스로 봉사의 참뜻을 일깨워주어 보람을 느끼도록 유도해 주기는커녕 아이의 봉사시간을 엄마가 채워 주거나 반 강제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시간만 때우는 비현실적인 봉사시간제도를 왜 계속 시행하고 있는지 교육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세계 최고의 갑부를 만든 록펠러 어머니의 교훈이 생각난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고 했다. 록펠러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든 것 또한 그의 어머니가 가르친 나눔을 실천하는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두달여 동안 준비하고 계획해서 정자가 세워지던 날 어르신들도 좋아하셨지만 함께한 후원회원들이 더 많은 기쁨과 행복을 가슴에 담고 돌아온 것을 보면 역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후원해주신 수원서장대클럽회원과 200인회 회원여러분 작은 음악회를 위해 봉사해 주신 가수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