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향기 속으로의 사색

추억으로부터 빚어낸 현실

초등학교때 나를 많이 따르는 동기가 있었다.

다른학생들처럼 싸움도 잘하고 딱지도 잘 치고 구슬치기까지 잘하는것도 아니었으나 공부를 잘했고 여자애답게 외모가 출중했었기에 여학생들 뿐만 아니라 남학생들에게까지도 많은 호감의 대상이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던 아이 한명이 있었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그애는 스스로 내 보디가드처럼 행동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특별한 점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말려도 늘 내 가방이며 소지품들을 대신 들어 주었고 아무리 만류해도 청소 당번인 내가 청소를 다 마칠때까지 복도에 서서 기다려 주었다.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로써는 많이 귀찮았다. 너무 주기만 하려는 친구란 때로 부담스러운 법이니까.

그러다 그애에게 나도 무언가를 해 줄 기회가 왔다. 그애 어머니가 하는 과일 노점의 일을 돕게 된 것이다.

우리집 골목 올라가는 길가에 리어커 한대 분량의 자그마한 과일 노점. 그애는 방과 후면 바로 그 노점에서 어머니를 도왔던 것이다. 당시 우리집은 현재의 이건희 삼성회장이 부럽지않을 정도로 경제적풍요를 누리고 살았으니 어려운 형편의 학우들을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홍옥(사과의 한 종류)이 빤질빤질하게 윤이 나도록 헝겁으로 닦아 놓거나 봉투를 가지런히 해 놓거나 하는 일을 오락하듯 즐겼고 내가 정성들여 닦아 놓은 사과가 팔려 나갈때는 서운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강의(당시 필자의 모친은 대학교수였슴)를 마치고 귀가하던 어머니한테 들켜서 혼이 날까봐 초조했으나 오히려 기특하다며 부둥켜 안으신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다양한 종류의과일을 만원어치를 구매하신 뒤 리어카를 집까지 밀어드리신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재미있던 그 놀이도 끝이 나게 되었다. 그 애와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헤어지게 되었다. 지방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거들며 그곳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소식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를 다닐때도 그애의 어머니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과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팔고 계셨다.

인사를 하면 반갑게 웃어주던 그분은 내가 타지역으로 이사를 한 뒤에도 가끔 전에살던 동네를 둘러보곤 한데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시고계신 이제는 할머니가 되셨으나 나를 알아보시며 반갑게 인사하는 내 모습을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시곤 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얼마 되지않은 지역(부천)으로 이사를 한 터라 동네 구역예배며 노인회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느라 동네 사정에 밝은 구역장님을 통해서나 가끔 그분의 근황을 전해 듣곤 했다.

지금도 그 장소 그 자리에서 여전히 과일을 팔고 계시다는 소식이었다.

"그 할머니 이제 머리가 하얗다...허리까지 굽은 노인네가 무슨 궁상인지 모르겠더라. 자식 넷이 모두 시집 장가 잘가고 하나같이 잘 산다는데. 자식들 마음 아프게 왜 아직도 그러고 있는 지 몰라!"

정말 못마땅하기 이를데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저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20년 이상을 그 장소에서 살아오셨다.

손바닥 만한 노점에서 번 돈으로 그 분은 올망졸망한 4남매를 키웠고 남편의 도박빚을 갚았고 두 딸에게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두 아들에게는 학사모를 씌웠다.

고맙고 대견한 그 터전을 쉽사리 떠나실 수가 없으셨지...

그래도 이제 연세를 고려해서 건강을 살피셔야 하지 않을까?

얼마전 그 동네교회에서 공연을 다녀 오던 길에 일부러 길을 빙 돌아 그 노점을 들렸다. 세월의 풍상에 깊은 주름이 잡히고 머리가 하얗게 센 야윈 할머니 한분의 모습이 보였다.

다가가 손을 잡으며 반갑게 인사하자 당신도 마찬가지로 친딸을 만난 듯 반가와 하셨다. 이런 저런 안부가 오고간 후 넌지시 여쭈었다.

"식구들도 모두 성공해서 잘 되고 진호도 그렇게 잘 산다는데 굳이 이 일을 꼭 하셔야 하나요? 이제 그만 애들이 마련해준 아파트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쉬시지 그러세요? "

"애들이야 성화지...하지만 맨날 하던 짓 그만 두는게 어디 쉬운가, 난 여기 나와야 편해.어딜가도 여기만큼 편하고 좋은데가 없어.여기 앉아 있으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날 수 있고 좀 좋아? 애들 돈 받아서 살면 난 병나서 바루 죽어. 내 손으로 아직 이렇게 일 할 수 있을때가 좋은 거지."

땀의 가치를 믿고 편법없이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기품이랄까...향기랄까! 자세히 보니 그분의 표정이 테레사수녀를 닮은 듯 보였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그 분수를 지키면서 살아 낸다는 것이 말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 탓에 조금만 형편이 나아지면 금새 그 표시를 내는 사람들을 굳이 경박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일의 귀천을 따지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얼만큼 사랑하고 그 일에 얼마만큼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살고 있느냐 하는 질문 앞에선 모두가 공평하다.

얼마전 청계천 노점상들의 절규와 분노를 보도매체를 통해서 듣고 보았다. 서민들의 교감이 오고가는 재래시장 또한 속속 철거되고 그에 따라 함께 철거되어야 하는 노점상들의 울부짖음도 보았다.

당국은 그곳이 그들에게 있어 생계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혹자는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고 말한다.

당국 또한 보상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애초부터 기득권이 없었던 노점상들의 단합이 집단 이기심의 표출이라며 냉랭한 대처를 하고 있다.

물론 보는 시점에 따라 찬반은 다르다. 하지만 평소 인간미 없는 마트보다는 노점에서 장보는 것을 좋아하고 재래시장의 투박함과 훈훈함, 그리고 싱싱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소 편파적인 지는 모르나 철거 노점상들에 대한 대처가 많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평도 되지 않는 비좁고 남루한 노점이지만 그곳에서 절망을 잠재우고 희망을 키우고 작으나마 결실을 맛본 사람들에게 그 장소는 피붙이처럼 애틋하고 대견한 곳이다.

반듯한 가게에서 허리펴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결코 짐작할 수 없는 남다른 애환이 그 안에 알알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활이 조금 나아져도 좀처럼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몇 십년씩 한 자리를 지키는 노점상들이 많은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한평의 공간이 삶 전체인 사람에게서 한평을 빼앗아 가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모두 빼앗아 가는 것이다.

아무리 대의 명분에 입각한 합법적인 철거라 해도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상실감에 대한 배려와 보상의 합리적인 법위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산술적인 셈에만 근거해 있는 현행법이 안타깝기만 하다. 융통성없고 인정머리 없는 법체계도 오래 묵은 무채색 옷을 벗고 인간적인 색체의 다양한 옷으로 갈아입는 순발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법을 시행하는 법관들, 기득권층의 문화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머리가 하얗게 세고 허리가 굽은 그분이 정으로 쥐어준 몇알의 참외에서 달디단 향기가 새어나왔다. 돌아 오는 길, 그 향기가 왜 그렇게 새삼스럽던지.

그분의 보람된 터전이었던 그곳이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어 곧 철거된다고 한다.

일평생 한길을 걸어온 분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주어졌으면... 식탁위에 놓아둔 참외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