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예견된 재난

김정섭(환경예술가)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지난 15일 전국적으로 벌어진 초유의 정전사태를 겪고 온 국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가을 늦더위에 느닷없이 당한 정전으로 공장이나 병원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나 신호등조차 멈춰 버리면서 최악의 재난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경제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인적 손실도 적잖았다. 원인과 책임에 대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고,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사과하고 있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재난이었다.

전기가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로 인한 핵에너지의 위험성에도 아직도 우리가 원자력 발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전기 때문이다. 이 사태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 문제와 재난 시 재해대책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제 와서 논의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겨울 긴 폭한과 폭설에 이미 전력수급에 대한 문제점 제기가 있었음에도 안일한 정부와 관련부서의 태도 앞에 대책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철이 바뀔 때마다 자연재난과 함께 인재(人災)가 버젓이 벌어지는 현실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기치로 삼는 현 정부의 살림살이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뿐이다. 기상이변과 기후 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의 기후 또한 예전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상이변과 맞물려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재난 및 전력위기 대응 시스템과 메뉴얼의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도 볼 수 있지만 사고 후 부처마다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정신이 없다. 국가적 위기나 재난에 책임부서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물론 행정안전부 재난종합상황실이 존재하고 있지만, 교통, 의료, 금융 등의 국가기반시설 및 각 정부부처와 관련된 위기대응 시스템과 보고 체계가 신속하게 확립·강화돼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쓰는 전기는 결국 수입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전기를 생산하려면 좀 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신재생 에너지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오래전부터 논의되고 있던 스마트 그리드(지능형전력망) 사업이 이제 절대로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이후 겨울철 전력사용이 증가하게 되면, 이번의 사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단 하루만의 늦더위에 전력수요를 예상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 대비한 효율적인 전력수급을 위해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진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몇 분 혹은 몇 시간을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산소호흡기의 전력이 끊어져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큰 건물에 비상발전기 하나도 없었을까? 이제 주거와 산업시설물의 비상발전시설에 대한 운영규정 역시 재점검해봐야 한다. 규정된 건축물과 산업시설물에 대해 비상발전기 설치에 대한 정부 규정은 있지만, 정작 운영과 유지보수에 대한 규정은 없는 현실이다. 간혹 일어나는 사고에 대비는 돼 있는지 몰라도 이번 사태처럼 재난에 가까운 사태가 벌어진다면 자칫 대형 사고를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의 에너지 절약 의식 강화만으로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엔 역부족이다. 이제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수술대에 오를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