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자영농민계층과 신흥상인계층이 시민계층을 형성하면서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절대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시민혁명을 통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이룩하는 근대시민사회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K.맑스는 시민혁명은 지배계급 안에서의 내란이기에 혁명이라 할 수 없고 자본주의시대를 뒤엎는 노동자 농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공으로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공산주의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러시아에서는 레닌의 쿠데타, 중국에서는 모택동의 말대로 공산혁명은 총구에서 시작됐기에 전쟁을 통해 장개석정부를 몰아내고 공산국가를 이끌어 냈고, 쿠바나 베트남 등 공산주의 국가는 모두 전쟁을 통해 공산 국가를 건설했다. 동구권은 러시아가 무력으로 통합한 것이다.
그러나 자유 민주자본주의국가는 모두 시민혁명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불란서 시민혁명 등이다. 혁명의 성공으로 시민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체제를 성공시켰다. K.맑스는 “자본주의 체제는 극소수의 자본가와 다수의 무산계급으로 사회구조가 피라미드형을 이루기 때문에 다수의 프롤레타리아가 소수의 부르주아를 혁명으로 전복시킨다”고 했다. 그리고 “내 것도 네 것도 없는 모두의 재산이 되는 공산사회가 등장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시민사회가 피라미드형이 아닌 다이아몬드형의 사회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에 자유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다이아몬드형의 구조는 소수의 자본가와 소수의 극빈자 사이 중간계층인 시민계층이 두터워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산국가에서는 평등을 바탕으로 해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모든 경제체제를 국유화하고 이를 사회주의라고 한바 국영기업체들이 모두 붕괴되는 사태로 사회주의국가들은 몰락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도 모순이 나타났다. 정치적인 자유는 평등을 바탕으로 민주정치를 성공으로 이끌었으나 경제적인 자유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자초이며 양극화 체제를 이루고 중간계층이 축소되는 경향이 현저해진 것이다. 이 모순을 시정 하고자 복지사회건설이라는 정책이 표방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가 복지정책을 시행하다가 정부의 예산이 초과지출돼서 국가부도 부실정부가 이곳저곳에서 봇물 터지듯 나타나 세계경제마저 위태로운 형태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선택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 등 보수 진보 양 진영의 정책차이는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켰다. 서로 상반된 정책을 내세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차례로 등장해 대조적인 정책을 추진했지만, 갈등만 증폭됐다. 노무현 정부 때는 노곤층(노무현이 만든 빈곤층), 이명박 정부 때는 엠빈곤층(MB+빈곤층)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고 조선일보는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현 위기를 지혜롭게 넘겨야 한다.
우리는 좌파와 우파가 연정을 떨쳤던 1997~2002년에 30여년만의 경제호황을 누리게 하던 조스팽 전 불란서총리의 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지난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좌파든 우파든 정부는 사회와 시장이 조화롭게 발전토록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은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기간사업을 성공하도록 하되 대기업은 부품산업을 중소기업이 육성하도록 하며 양자의 관계가 원활하도록 정부와 경제계가 공생을 추구하는 정책을 조화롭게 할 것이며 ‘사회’는 중간계층이 중심이 돼 부를 획득한 상류층과 손을 맞잡고 빈곤층을 자립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공생 추구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양극화의 현상은 중산계층이 두텁고 든든한 자리를 굳히는 해법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해법은 시장도 사회도 중간계층 즉 시민사회가 든든해져야 한다는 것이고 사회와 시장이 서로 웃음으로 바라보는 공생이 추구돼야 비로소 좌·우의 대립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