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의 힘으로 민족 정기를 세우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애국심이 강하다.
오노가 치사한 짓으로 금메달을 탈취했을 때, 또 우리 민족을 깎아 내리는 말을 했을 때 온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흥분을 하였었다.
또 고이즈미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이 보도 되고, 일본이 우리의 독도 우표 발행에 시비를 걸자 일본을 비판하는 데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을 듣고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현상들만을 보면 우리나라는 애국심이 넘치는 사회이다.
매국노는 한 사람도 없거나 아니면 적어도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된 사회인 듯하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제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만주벌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후손 중 상당히 많은 수가 극빈층이 되어 허덕이고 있고, 그들을 잡아가두고 고문하던 자들의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일제의 요구에 따라 자기 민족을 깎아 내리고,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총알받이로, 성노예로, 머슴으로 가게 만들었던 자들이 각계에서 존경받는 지위에 있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이 어찌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있는가.
도대체 왜 이처럼 모순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최근 우리는 이런 의문을 일거에 풀어 버릴 수 있는 일들을 목격했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기 위하여 민족문제연구소에 매년 5억 원씩 지원되던 예산이 국회에서 전액 삭감되어 버린 것이다.
이 예산은 매년 5억 원씩 5년 동안 지원되기로 했던 것인데, 2년만 지원되고 삭감되어 버렸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각종 지역 사업을 위해 선심성으로 증액한 것이 98억 원이나 되는데, 민족정기를 살리기 위해 그나마 있던, 불법 정치자금을 주무르던 자에게는 푼돈에 지나지 않는 예산마저 없애 버린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법사위에 계류 중이던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정부의 공식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우리 정부의 실무책임자가 마치 우리 학계 등에서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말하며 중국을 변론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을 통해 우리는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의 대다수들은 친일 잔재의 청산, 민족 정기의 회복을 원하지 않고 있다.
민초들은 열렬하게 원하는 민족 정기의 회복을 힘깨나 갖고 있다는 자들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본 희한한 현상을 낳게 만들고 있다.
이른바 국민을 대표한다고 하는 국회의원들, 그들 대다수의 조상은 안타깝게도 친일파들이다.
친일 행각으로 이 사회에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기반을 잡고, 그 힘을 후손들에게 무사히 물려주어서 대를 이어서 떵떵거리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자들이다.
이들의 후손인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조상을 욕되게 할 ‘친일인명사전’의 편찬 예산을 달가워 할 리가 없다.
그들 중 극소수인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김희선, 김원웅의원)이 발의한 것을 명분 때문에 간신히 동의했다가 이제 그 본색을 드러내고야 만 것이다. 정부의 고위 관료, 각계의 명망 있는 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말만 나오면 어떤 이들은 말한다. 언제까지 과거에만 얽매여 있을 것이냐고. 일제의 폭압 속에서 어떻게 친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그리고 그 후손까지 단죄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언제까지 과거에만 얽매여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에만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도, 희망찬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친일 잔재를 청산해야 하고, 민족 정기를 회복해야 한다.
자신의 탐욕과 안일을 위해 민족을 배반하고 동포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던 자들이 단죄 받지 않고,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고난 속에서 삶을 보낸 독립운동가들이 칭송받지 못한다면 누가 민족이 위기에 빠질 때 자신의 몸을 던질 것인가.
그런 민족이 어찌 희망찬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겠는가.
물론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친일한 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누가 그런 사람들까지 단죄해야 한다고 하였는가.
소극적으로 친일한 사람까지 싸잡아 매도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과장해서 지속적으로 펴는 자들은 극악한 친일파들까지 그 속에 묻혀서 어물쩍 넘어가게 하려는 꼼수를 부리는 것일 뿐이다.
정부가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반대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친일파의 후손들이 반발하여 우리 사회가 분열이 될까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고, 그야말로 과거에 우리를 꽁꽁 묶어 둘 수밖에 없는 퇴행적 논리일 뿐이다.
자기 조상의 죄과를 진심으로 참회하는 한 어느 친일파의 후손도 욕먹을 이유가 없다. 아니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그들을 응징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친일 행각에 대한 진상 규명을, 그로 인한 민족 정기의 확립을 지난 60년 동안 끊임없이 방해해 온 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지금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친일파 청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다.
오늘 이 순간에도 친일파 청산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운동을 온갖압력과 궤변으로 가로막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지난 60년 동안 수구적인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꾸준히 진전해 온 친일파 청산의 운동이 하나의 결실을 이룬 조직이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이다.
이제 민족문제연구소가 본격적인 힘을 갖추어 나가려고 하자 드디어 친일파의 후예들이 궤변을 늘어놓으며 은근슬쩍 이미 확보된 예산까지 삭감한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자들을 용서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런 자들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민족의 현실을 안타까워한다고 하면서도, 정치판이 썩었다고 흥분하면서도, 이런 자들의 농단에 그저 놀아나는 민초로 계속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제는 아니라고 하자. 이제는 민초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보여 주자. 이런 자들과 대립하는 것은 민족의 ‘분열’이 아니라, 쓰레기를 우리 민족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