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가 태어난 곳은 아프리카라고 했다. 이들 중 에덴동산을 거쳐 북극으로 가 바이칼호수에 머무른 이들이 있다. 브라이트 족이다. 지금 브라이트자치국으로 존재한다. 브라이트 족과 우리의 DNA가 같다니 그들이 우리의 조상이다. 우리 조상이 남하한 것이다. 넓은 들판을 지나게 되면서 그곳을 ‘시브리’라고 했다. ‘시’는 시집간다는 새것을 뜻하고 ‘브리’는 벌판이란 우리말이다. 새로운 벌판을 뜻했다. 이곳이 지금의 시베리아다. 더 남하해서 만주에 머무르게 된다. 북극의 곰과 더불어 살았던지 그 곰들이 따라 내려왔던지 곰가죽옷을 입고 있었던지 우리 조상은 곰의 집단을 이뤘다. 맥족인 것이다. 한편 북으로 올라가던 일부의 무리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만주로 왔다. 중앙아시아에는 범들이 살고 있다. 범들이 따라왔던지 호랑이가죽옷을 입고 있었던지 이들을 호랑이 집단이라 했다.
김지하가 몇 년 전 카자흐스탄 박물관을 찾았는데 관장이 카자흐스탄과 한국은 한 핏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곳에는 ‘탱글’ 즉 단군이란 간판이 많이 있고 고구려의 수도였던 졸본의 용어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졸본을 ‘금성’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만주에 머무르게 된 집단을 범의 집단이라 했다. ‘예’족이다. 범의 집단과 곰의 집단이 더불어 살게 되면서 고조선을 이룩한 것이다. 역사상 우리 조상은 예, 맥족이라 한다. 이곳에 환인 하느님이 아들 환웅을 내려 보냈고 환웅이 곰집단의 처녀를 임신케 해서 단군을 낳았다고 했다. 우리 조상은 ‘환인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기독교에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동정녀 성모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것처럼 단군은 이른바 웅녀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이다.
단군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임금이란 뜻이고 첫 단군이 왕검이라는 것이다. 단군 조선에는 47대까지 단군이라 일컫는 왕이 존재했는데 마지막 단군이 고열가라 했다. 고조선에서는 단군의 주관하에 환인 하나님에게 기도해 개천절을 축복했다. 삼국시대에는 매년 10월에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고려의 팔관회 등 왕이 주관하는 제천행사를 열었다. 일제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1949년 우리 정부는 10월 3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그러나 썰렁한 국경일로 전락했다. 10월 3일에 단군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터전이었던 만주의 고토와 북한의 땅을 찾지는 행사를 거로족으로 한다면 아마도 개천절행사는 민족의 구심점을 찾는 거창한 행사의 날이 될 것이라는 견해다. 이제 단군과 한글의 근원을 알아보자.
이일봉이 지은 ‘한단고기’에 보면 경자2년(BC 2181) 삼랑 을보륵이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라 했다는 것이다. 이 가림토 문자를 조선조 세종대왕 때 수정 보완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세종실록’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10월 초에 임금께서 언문28자를 만드셨으니 그 글자는 옛 ‘전자’를 모방한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언문이 예전부터 내려오던 옛 가림토 문자를 근본으로 한 것이며 다만 어순 등을 새로 바꾸어 다시 재정립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한글의 모태인 가림토 문자는 몽고 만주 서역 등 당시 단군조선의 영향력 아래 있던 여러 지역에서 사용됐다. 일본에는 가림토 문자로 된 비석과 문서까지 남아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신대 문자라고 한다. 가림토 문자가 일본을 비롯한 중원의 서쪽인 서역에서까지 사용됐다는 사실을 최만리 등이 올린 상소문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를 한 이일봉에게 찬사를 보내며 또한 핀란드의 람스테드 교수는 한국어가 일찍이 4000년 전부터 알타이어족에서 독자적으로 분리됐다고 말하고 있다. 4000년 전이면 바로 단군조선시대다. 우리는 한글날을 기념일로 축하할 뿐 아니라 개천절과 더불어 단군조선에 이어서 이루어진 건국과 한글의 시원을 이룩한 고구려 옛 땅을 되찾기 위한 전 국민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