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의 그림이 있는 풍경③] 길위에서-바람나무

▲ 길위에서-바람나무 / 33×53cm / Acrylic on Canvas / 2010
여행의 매력중에 '바람'을 빠뜨릴 수 없다.

1월, 살 속 깊숙이 들어오는 아리도록 차가운 바람, 2월의 바람은 다크 브라운과 비리디언, 그리고 소량의 프렌치 블루가 섞인 공기의 움직임. 기분 좋은 신선함과 함께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3월의 바람은 희망과 절망의 교차점이다. 꽃가루와 함께 날아드는 기분 좋은 4월의 하늬바람, 5월의 나른하고 따스한 바람이 다가오면 숲속의 널찍한 바위위에서 팔다리를 벌리고 누워보라. 피부의 땀구멍을 모두 열고.

지나치기 쉬운 6월의 바람에는 풀내음이 가득하다.  나무들은 그들이 가진 가장 멋진 것들을 7월에 다 쏟아낸다. 8월 한여름, 천지에 가득한 태양빛과 짙푸른 초록의 정열. 아쉽지만 나무들은 바람을 내려놓아야 하는 9월. 10월의 바람은 홀로 설 준비를 해야한다. 나뭇잎들을 휘감아 돌리며 아쉬운 작별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11월의 바람은 그 자체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 의지할 곳도 없이 황량한 대지를 지켜야한다. 12월에는 바람도 쉬어가는 달, 그저 따뜻한 기운으로 아이들의 언 손을 녹여주고 싶을 뿐.
 
수년전 어느 늦여름, 경주 두산리 시골마을을 걷고 있었다. 길 너머 어딘가로부터 스물스물 다가오는 바람이 느껴진다. 눈앞에는 바람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고 난 길 위에 털썩 앉아 그 바람과 나무의 조우를 즐기고 있었다. 나도 그들의 일부로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얼마간을 앉아 있었나 보다. 바람, 나무, 그리고 나…. 우리 외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