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Integration)의 진정한 의미

[열린세상] 홍원식(법학박사·(사)백범정신실천운동본부 이사장)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은 그야말로 콩가루 상태의 국가로 전락하였다.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은 국가 기능 수행 자체를 기대할 수 없는 무기력 공화국이었을 정도. 이러한 독일의 혼탁한 정국을 향해 스멘트(R.Smend)라는 젊은 학자가 외쳤다. “통합(Integration)만이 난국에 처한 독일을 구해낼 수 있다.” 그러나 독일 정가는 물론 독일 국민도 이 젊은 법학자의 소리를 외면했다. 스멘트의 주장인즉 “1차 대전 후 독일이 만인의 만인 상호 간의 투쟁 상태 즉,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상태에 있는 만큼 만인의 만인 상호 간의 자제와 협력 즉, ‘통합’을 지향하는 것만이 난국에 처한 독일이 회생할 수 있는 길이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당시 독일인들은 상황이 어렵다 보니 혜안을 가질 수 없었는지 아니면 게르만민족 특유의 다혈질 때문이었는지, 마치 스멘트의 종교운동 또는 국민운동 스타일의 온건한 대안보다는 난국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파격적 대안에 목말라 했던 것 같다.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서까지 소작쟁의가 있었음은 물론 세계 전체를 대공황을 빠뜨렸던 1929년 이후 독일의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고,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1930년 중반에 탄생한 히틀러의 나치즘은 아편처럼 독일국민 속에서 급신장했다. “인생이란 자신의 운명과의 영원한 투쟁이다! 이 투쟁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가야 할 길은 지구를 떠나는 길이다!”라는 식의 히틀러가 온몸으로 품어 내는 연설에 독일국민은 광분했고, 게르만민족 중심의 광대한 독일의 세계 제패의 꿈은 용솟음쳤다.
 
그러나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한다”는 성구대로 결국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전범국가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독일국민은 다시 한 번 나락에 빠지게 됐다. 이때서부터 만인의 만인 상호 간의 자제와 협력 즉, “통합(Integration)만이 난국에 처한 독일을 구해낼 수 있다”는 스멘트(R.Smend)의 선구적 주장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스멘트는 진정한 통합을 위한 3대 요건으로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적 가치’의 정립과 공감대적 가치에 대한 국민이 실질적인 ‘동의와 지지’ 및 국민을 공감대적 가치 체계하에서 하나로 묶어 낼만한 능력을 가진 ‘통합적 지도자’를 들었다. 독일국민은 두 번씩이나 자행한 전범 국가로서 “역사적 오만은 곧 패망이다”라는 뼈저린 반성 속에서 스멘트가 제시하는 '통합주의'에 입각해 옥동자를 탄생시켰다. 다름 아닌 본 기본법(1949, 우리의 헌법에 해당)이 그것으로, 1990년 통일독일헌법의 모태이기도 하다.

타산지석 삼아 독일헌법사를 통해서 바라볼 때 진정한 의미의 통합의 요체(핵)는 무엇인가?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통합의 시작이자 끝이다. 통합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범위 차원에만 있지 않다. 회사나 단체와 같은 크고 작은 조직은 물론 두세 식구만이 있는 단출한 가정에도 통합은 중요한 현안이자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세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부모 자식 간에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느냐” 여부가 가정의 통합(=행복)을 판가름 짓는 결정적 요체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11일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 등이 결합한 가칭 ‘민주통합신당’이 출범하며 한국 정당사에 ‘통합’이란 용어가 전면에 등장했다. 과연 ‘통합’이란 어의에 걸맞은 정강정책을 갖추고 있는지와 더불어 묻고 싶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할 준비가 돼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