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복여고 관현악, 연주가 돋보였다

[김훈동 칼럼]

▲ 수원예총 회장
현대음악의 좋은 점은 연주자가 틀리게 연주해도 관객이 알 수 없다는 데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만큼 감상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클래식 음악은 출발부터 답답함과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그 어려운 클래식 음악을 ‘영복여고 관현악단’이 완성도 높은 연주를 펼쳐 관객으로부터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지난 16일 수원청소년문화센터 온누리 아트홀에서 열린 연주회 자리에서다.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다. 예술전문학교도 아닌 인문고교에서 10년째 이어오고 있다는 데 그 뜻이 깊기 때문이다. 예술과 문화도시-수원에 걸맞은 여고관현악 연주회에 찬사를 보내도 아까울 게 없는 듯 여겨졌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긍정적인 언어로 지적해 줌으로써, 자신감에 불을 붙이고, 무대 위에 세워주고 제자리에 설 때까지 끝까지 힘을 실어 준 김성호 지휘자 선생님이 있기에 가능했다. 최고의 리더는 선생님이다.

음악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인간관계도 서로 도와주고 이끌고 감싸 주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않을까. 저마다 내는 악기들이 생동감 있는 연주를 하면서 관객들에게 교훈을 던져주는 듯하다.

마음을 사로잡은 단순한 관현악적 기교를 넘어선 학생들의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음악혼(魂)을 느낄 수 있었다. 연주는 단원들의 기량이다. 완성도 높은 연주회는 음악이 지닌 위대한 힘을 마음껏 표출한 자리였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는 걱정이 앞섰다. 여고학생들이 레퍼토리를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기에 그렇다. 기우에 불과했다. 시트라우스의 박주서곡, 베토벤의 운명을 완벽하게 연주했다. 이어서 3학년생들의 바이올린, 첼로, 마림바 협연도 말끔하게 이뤄졌다. 즐거움은 지혜보다 똑똑하다. 음악회는 즐기기 위해 열리는 것이기에 그렇다. 어떤 대상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자신들 안에서 시작되는 힘이다. 방과 후 수업으로 이뤄지는 관현악단은 영복여고의 명물일 듯하다.

학부모들은 얼마나 자녀들을 대견하게 생각할까. 밝은 표정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연습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연주 실력이 출중해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 정도다. 학생들은 관현악단 활동을 하면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익힐 것이다. 처음에는 은근한 경쟁심도 생기겠지만 신나게 화음 맞추면 마음도 하나가 될 듯싶다.

공부하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악기 연습에 몰두했다. 연주하다 보면 공부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스트레스도 풀리고 마음도 즐거워져 학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관현악단 활동을 통해 학업 등 음악 외적인 부분에 도움을 받았다. 관현악단원 17명이 서울대를 비롯해 유명 대학입시에 합격한 것이 그를 증명한다.

서로 화합을 이뤄본 경험, 자신이 연습에 빠지거나 제대로 된 소리를 못 내면 음악 전체를 망치게 된다. 전체와 조화를 이뤄가며 자기 몫을 분명히 해낸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음악은 보편적 언어다.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다른 분야의 예술작품을 수용할 때와 달리 감상자의 직접적인 정서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화랑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처럼 감정의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시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언어의 규칙이나 의미, 혹은 문체나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끙끙댈 필요도 없다. 음악 감상은 인간이 향유하는 예술 경험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험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은 관심을 먹고 자란다. 보다 많은 이들이 공연에 참석하여 격려하고 공감하는 분위기 조성이 절실하다. 시립오케스트라만 중요한 게 아니다. 자라나는 음악도(徒)를 키워나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관현악단은 그 도시의 음악적 저력과 저변을 동시에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한국축구처럼, 여고 관현악단도 힘을 보태면 더더욱 돋보이게 될 것이다. 멋지게 마무리할 때 홀에서 모든 관객이 크나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