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대에서 내다보는 1984년의 미래는 공포스럽고 획일화된 사회를 보여준다. 세계는 3개의 초강대국으로 통합되어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텔레스크린을 통해 당의 명령을 하달받거나 사람들을 감시한다. ‘빅 브라더’라는 절대통치자의 지휘 아래 인간의 사고마저 지배받는 사회. 과학이 발전한 미래의 사회임에도 유토피아는 찾아볼 수 없고 사람들은 기아와 가난에 허덕인다. 아마도 조지 오웰은 여느 공상과학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문명의 발전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을 경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1984년을 훌쩍 넘어, 현재 인류에게 직면한 문제들은 과거의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미래소설보다도 더 심각하다. 과학의 발전은 오웰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고 극적으로 발전했지만, 인간이 당하는 피해보다는 인간에 의한 파괴행위에 대한 것은 간과되고 있었다. 이미 우리 인류가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도 자연환경의 파괴와 그 결과는 훨씬 심각하고 더욱 치명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인간이 생존이란 그럴듯한 명목으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환경의 훼손과 자원의 고갈, 종의 멸종 등은 이제 인간 자신의 발등을 찍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과학을 탄생시키고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얄팍한 자만심의 결과로 인간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지진과 해일 등의 극단적인 기후변화, 물과 식량부족, 방사능의 공포 등 어쩌면 오웰의 시대에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과학의 발전이 아닌 인간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2011년 올 한해, 많은 일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경기 침체, 정치적으로는 국제 테러리스트인 빈 라덴과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정보통신의 혁명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한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초 일본 동부의 대지진으로 시작된 방사능 공포는 일본과 전 세계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터키와 뉴질랜드의 강진과 태국과 필리핀의 홍수로 수많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인 손실은 물론이고, 생명의 존귀함마저 함께 쓸려나가 버린 듯 처참한 풍경만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나 정치적 이념보다도 더 무서운 환경의 재앙은 인류의 가장 큰 공적(公敵)이 되었다.
인간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이제 와서 누구의 잘못을 탓하고 후회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인간이 방심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든 아니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음에도 저지른 일이든지 간에 이제 남은 일은 인간 자신의 노력과 자연의 회복력을 기대하는 수밖에는 없다. 과학과 체제의 감시에 지배당하는 인간성의 파괴를 두려워했던 미스터 오웰은 아마도 이러한 결과까진 예측하진 못했으리라.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 그 자신의 자만심이라는 것을.
2011년의 마지막과 함께 미스터 오웰에게도 인사를 보낸다. 1984년에서 27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어디에서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기후변화’라는 빅 브라더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나 인종, 체제를 초월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