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현국 정신문화 칼럼니스트

마침 점심시간이라 정현국 작가와 동행한 청년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됐는데, 합석한 안정현(20. 홍익대), 김예진(20.장안대)은 정 작가가 멘토링 하는 청년들이라고 소개 하면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10대에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20대에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30대를 맞게 된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빨리 찾고 초지일관 밀고 나가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말 하며, 본인의 청년 시절을 들려 줬다.
“중학교 때까지 꿈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듣고 자란 말이 ‘착하게 살라' 였는데 착하게 살 수 있는 직업이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한적십자 청소년 봉사상을 받으며 사회봉사에 사명을 갖게 됐다.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업으로 60여 평생을 살아 왔다.”
그러나 정 작가에게도 어려운 시절은 있었다. 원주에서 아버지가 지물포를 했는데, 가세가 기울어서 대학 진학을 못했고, 군대 입대하기 전까지 2년 간 고아원의 7세 미만 아이들을 24시 돌보는 남자 보모로 일하기도 했다. 전쟁고아들은 아니었지만, 당시 70년대 초에는 시설에 맡겨지는 아이들이 많던 시절이있었다.
고아원에 근무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읽게 됐다. 그것이 목회자로 사회에 헌신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어떻게 작가가 됐는지를 물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신학을 공부했어요. 공부하면서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때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써 준 글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을 만들었지요. 그것이 데뷔작인 <끝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시집으로 1995년 세상에 나왔습니다.”
봉인된 샘에 뚜껑이 열린 것처럼 글이 샘솟아서 지금도 매주 4,5편의 시와 에세이를 쓴다고 한다.
“청소년 시기는 질풍노도의 시기입니다. 고대에 살았던 청소년이나 현대를 사는 지금의 청소년이나 시대를 초월하여 ‘내가 누구인가’라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혼란기를 겪습니다. 통과의례처럼 어른들도 이 시기를 다 겪었지만, 어른이 되면 대부분 이 시기의 정서를 잊게 되지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포용과 긍정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아이들이 성장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고, 전체 속에서 나를 찾는 ‘눈’을 열어 줘야 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고 정 작가는 힘 주어 말한다. 특히 내가 사는 곳 수원의 성문을 열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도록 청소년들이 소통(疎通)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희망한다.
“20여 개 국의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각 나라들의 문화를 연구하는 정신문화 연구가로 20여 년을 보냈습니다. 수원지역의 청소년 정신문화운동에 터전을 마련하는 일에 생을 걸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발간하는 책의 인세나 원고료는 모두 청소년 정신문화운동 기금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수원에 ‘청소년 정신문화 공동체’를 만들어서 지역 청소년들이 21세기의 주역으로 설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는 정 작가의 눈빛이 함께한 청년들의 눈빛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2012년 수원일보 필진으로 위촉된 정현국 정신문화 칼럼리스트. 청소년들과 꿈과 희망을 나누고, 가족들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기를 소망하는 그의 칼럼을 신문을 통해서 만날 수 있게 됐다.
프로필
현 Ramnet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중(미국 LA)
현 21세기 정신문화연구원 고문
현 Darakwen 신문 논설위원
현 수원임마누엘교회 담임 목사
저서
시집<끝에서부는 바람>,<점은 획이 되고 빛이 되리라>
칼럼집<복음명가만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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