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우울

[열린세상] 정현국(정신문화 칼럼니스트)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기대를 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넘어가는 해를 보며 회포를 푸는 서해안의 해넘이 여행이나 새해 첫 빛을 받는 해돋이를 보기 위한 동해안의 걸음으로 고속도로가 불통이 되기도 한다. 새해는 마치 준비된 활에 새 화살을 시위에 걸어 당기는 것 같은 기분을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제의 그 태양이 다시 보이고 하루의 24시간은 고단하게 앞으로 달려나간다. 새해의 달력은 새로운 종이로 대신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을 그렇게 하얀 도화지에 새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할 수는 없는 답답함이 있다.

여전한 회색빛 뉴스의 불편한 진실들과 어두운 경제의 그림자와 자유를 놓쳐버린 개인들의 방황은 누구라도 우울함 속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많은 생각이 풀어내지 못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을 때 그 쌓여진 현상을 우울(憂-근심 우 鬱-막힐 울)이라고 하고 그 정도가 심한 것을 우울증이라고 한다.

우울은 생각이 막힌 것이다. 결국 좋은 생각이 흘러나가지 못해 쌓인 것이다. 도로에 통행이 많아져서 정체현상이 일어나듯 생각이 과부하가 걸려 풀리지 않는 상태에 머문 것이다. 그러므로 우울은 고통스럽지만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약간의 우울은 자신을 갱신시키는 데 필요하다. 글을 쓰는 입장으로 볼 때 현상에서 사물의 깊이를 보는 것은 밝은 태양빛에서 보다는 어둔 빛의 거친 자리에서 이다.

대개의 사람은 보통의 경우에서 경험하는 이런 우울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자신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로 삼는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쌓인 생각의 기회 즉 우울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거기에 빠져들어 문제 아닌 것까지 문제로 만드는 자리에 든다. 사람에게 우울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존재의 틀이 먹고 생산하는 본능에 고정된 동물과 달리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것조차도 생각하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에 따라 종교도 예술도 철학도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은 동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세르반테스의 말은 옳다. 진정한 우울은 생각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과정인데 교통정리가 안 돼 막혀 있으므로 무기력해 지는 것이다. 우울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자연스러움에 생각을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그 이상의 생각은 근심이요 걱정이다. 생각하기에 좋은 것도 많은데 생각의 새치기 꾼인 근심과 생각의 앞지르기인 걱정이 들어오니 밀려가는 생각이 막혀 생각의 길에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쌓여 우울이 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중에 우산장수, 양산 장수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를 알 것이다. 이 어머니는 비 오는 날은 양산 장수하는 아들을 걱정하고 맑은 날은 우산 장수하는 아들을 걱정했다. 그러나 지혜자가 가르쳐 준 대로 비 오는 날은 큰아들 우산 잘 팔려 감사하고 맑은 날은 작은아들 양산 잘 팔려 감사했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이지만 생각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문제도 되고 감사도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해의 시간이 자동적으로 자연스러운 우울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울할 수 있는 것이 생각하는 인간의 특권이고 그 멋진 기회를 또 다른 새치기인 근심이나 앞지르기인 걱정에 내어 주지 말고 생각의 질서를 지켜 바른 생각으로 새해를 열어가는 것이다. 그때에야 자연스러운 우울이 주는 생활의 동력을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