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구멍 숭숭 뚫린 살창고쟁이 그러나 사랑으로 따뜻합니다

시원시원한 시집살이를 바라던 어머니 사랑, 살창고쟁이를 만들다


조선 시대 여자들은 치마저고리 속에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요? 먼저 겉저고리 안에는 ‘속적삼’, ‘속저고리’를 입었고, 속옷도 아닌 것이 속옷처럼 쓰인 ‘허리띠’가 있습니다. 이 ‘허리띠’는 조선 후기로 오면서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자 겨드랑이 밑의 살을 가리도록 한 것입니다.

웃옷보다는 치마 속에 입는 옷의 가짓수가 많았는데 이를 살펴보면 허리 부분을 부풀리는 3, 5, 7층의 무지갯빛 ‘무지기’, 허리 아랫도리를 부풀려 보이게 한 ‘대슘치마’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너른바지’를 입었고 또 그 속에는 ‘단속곳’ 이어서 ‘속고쟁이’를 입었지요.

속고쟁이를 보면 살창처럼 생겼다고 해서 ‘살창고쟁이’, 문어 다리처럼 생겼다 하여 ‘문어고장주’, 가위로 잘라냈다는 뜻으로 ‘가새고장주’도 있었는데 이는 새색시가 시집갈 때 예의를 갖추려고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게 되는데 이때 조금이라도 시원하라고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입혀 보내는 옷이지요.

살창고쟁이는 1930년대까지 입다가 이후부터는 앞이 막히고 뒤만 트인 ‘개화고장주’에 자리를 내어주는데, 이러한 고쟁이 속에는 또 ‘속속곳’과 ‘다리속곳’을 입을 만큼 예전에 여성들은 속옷에 몹시 신경을 썼습니다.

겹겹이 속옷을 갖추어 입은 것은 보온을 위한 점도 고려되었겠지만 겉옷의 맵시와 더불어 여성들의 정조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시집살이하면서도 구멍이 숭숭 뚫린 살창고쟁이처럼 시원하게 살라는 바람이 담겨 있는 등 시집가는 딸의 행복을 빌던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속옷 하나에도 묻어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