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의 그림이 있는 풍경⑧] 길위에서-만남V

▲ 길위에서-만남V / 53×72.7cm / Acrylic on Canvas / 2011
선배님께.

신부의 옷 색깔을 여러 번 바꾸었습니다. 처음엔 예쁘고 통통한 볼에 번지는 미소를 생각하여 분홍의 원피스를 입혔습니다. 그다음은 선한 눈빛 너머로 보이는 정의로움과 의연함에 비리디안이 살짝 들어간 청록빛이 떠오르더군요. 배경에 복사꽃을 닮은 분홍빛을 깔고요. 한 번 상상해 보시렵니까?

새신랑새신부의 사랑의 에너지가 천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데 여기저기 꽃들이 떨어지고 있는 장면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에 아담과 이브가 그저 자연의 법칙대로 서로에게 이끌렸던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화사하고 기분 좋아지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이내 뭔가 석연찮아 캔버스를 멀리서 가까이서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선배님의 결혼소식에 대한 나의 기쁨과 축하의 의미를 담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두 분의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에너지와 조화로움을 놓친 것입니다. 사랑에너지, 조화로움, 상승 이 세가지를 모두 그림에 담고 싶었습니다.

뒷배경의 면분할은 이때부터입니다. 맑은 대기가 두 사람을 감싸고 사랑의 에너지는 시작도 끝도 없는 원의 형상처럼 돌고 돌아 강한 힘으로 승화합니다. 신부의 원피스는 퍼플 매들에 퍼머넌트 레드가 조금 섞인 붉은빛으로 다시 칠해졌습니다. 아! 이제 신랑의 색, 그레이와 조화롭습니다. 신부의 미소도 더욱 활기차 보입니다.

제 기억 속의 선배님은 참으로 따스한 분입니다. 젊은 날, 세상의 모든 소통과도 벽을 쌓고 싶던 그때 조용히 건넨 따뜻한 몇 마디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정의 앞에서는 대담하게 우리 후배들을 일깨워주셨지만, 담벼락에 핀 애기똥풀을 가장 먼저 알아보시고, 와서 보라 하시던 부드러운 남자.

그 고마움을 제가 가진 소박한 손재주로 조금이나마 갚아보려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선배님, 결혼 축하합니다.

그림 속의 부부처럼 늘 무념무상 하는 삶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