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부시정권은 북한 핵문제에 관련해서 기존의 강경 노선에서 벗어나서 유화정책을 구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이 가뜩이나 이라크문제로 골치인 상황에서 북한을 상대할 여유가 없다는 점, 강경 일변도의 부시의 외교정책에 관한 국내외 비판 여론 고조, 그리고 결정적으로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외교정책의 부재(不在) 등으로 나타난 정책 변화라고 분석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핵을 이용한 '위험하지만 효과적인(dangerous but very effective)' 외교정책을 일관되게 구현하며 오히려 미국을 압박했던 것이다.
상당히 효율적인 '북한식 외교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한과 미국의 줄다리기 첫째 판은 아무래도 북한의 승리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의 줄다리기는 지루하게 계속되리라 예상된다. 이 지루한 줄다리기의 승부는 북·미 서로간의 보이지 않는 양보 속에서 끝이 나겠지만 어쩌면 이 줄다리기 승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연관되어질 수밖에 없는 결말로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자기네들의 경기에 경기를 구경만 하던 단순한 구경꾼인 우리가 그 경기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황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북한핵문제에 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살펴볼 때 이는 단순한 기우(杞憂)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북한 핵문제에 직면해서 우리 정부는 기존의 미국의 입장에 단순히 편승(便乘)하는 종속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요하고 비중 있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미 있는 노력을 하였지만 그 결과는 비참하였다.
북한은 아예 우리와 대화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우리의 중재안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배신(?)으로 인해 채택되어지지 못하였다.
왜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일까? 중재안의 내용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중재안의 내용은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중재안이 채택되지 않은 이유를 알아보려면 북한 핵문제에 관련되어 흐르는 북·미간의 미묘한 흐름을 우리가 간파하여야 하는 것이다.
일단 북한은 미국, 일본 다음으로 남한을 믿지 못한다. 이는 그동안 남한이 실시하였던 미국 입장 편승을 통한 대북 문제 해결방법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남한을 미국 입장의 충실한 대변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과의 협상을 통해 그들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미국에게 비치는 결과를 낳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그들의 의도를 미국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다.
미국에게 있어서도 대북 문제의 효율적인 중재자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어차피 한국 정부는 미국의 입장에 따르게 되어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대북 정책에 있어서 의견이 삐걱거릴 때 미국은 한국에게 적당한 압력과 제재를 행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니면 일본을 이용해서 한국을 압박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시간이나 방법과는 상관없이 북한으로 달리는 미국 열차에 '울며 겨자 먹기'로 타게 될 것이라고 미국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즉 북한이나 미국에 있어 우리는 별로 중요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양쪽에 있어 무시할 수 있는 중요성이 없는 대상이 어떻게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고 자청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중재안이 이번 북핵사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데에는 이런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는 최소한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의 외교적 능력을 스스로 업그레이드(up-grade)할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번의 경우는 예외적이지만 우리는 북한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기존의 미국 입장 편승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에 편승하는 것은 확실히 외교적으로 쉬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에 있어서 한반도 문제는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라는 강력한 경쟁상대 사라진 지금의 상황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서 한반도의 중요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세밀하게 설정되지 못하고 문제가 터지면 그때 그때마다 '언 발의 오줌 눕기'같은 미봉책(彌縫策)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미봉책은 결과적으로 한반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미국의 미봉책으로 대북 정책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대북 정책이 설정할 수 없었다.
또 이런 우리의 미국 편승 대북 정책으로 인해 북한은 우리를 단순한 미국 입장 전달자라는 인식을 갖고 우리와 대화하는 것보다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제라도 우리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제 3자의 입장에서 북핵 문제를 바라보고 효율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강력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중재라로서 우리가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기준을 견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생각해서 우리가 미국과 좀 더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는 의견들과 민족 자결의 입장에서 우리와 북한은 하나라는 의견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
바뀌기 쉬운 것이 우방(友邦)의 개념이고 북한은 우리를 민족이라는 개념보다는 경제회생의 지원자로 더욱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일단 미국과 북한을 같은 거리에 놓고 비교하여 우리의 안정과 그리고 국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중재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때 국가 간의 단순한 맹신(盲信)이나 감상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제 3자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아야 한다.
앞으로 북한과 미국의 지루한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이고 두 나라 사이의 물밑접촉을 통해 이번 북핵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그 결과가 우리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중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은 이번 사태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입장인 것처럼 보인다.
생떼는 북한이 쓰고 생색은 미국이 내고 뒤처리는 우리가 해야하는 외교적 악순환을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우리는 최소한 북핵문제에 관해서는 객관적인 중재자의 입장에서 우리의 안정과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번 사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차후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우리의 주도권을 확립해 나가는 데에 있어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번 사태에 대하여 우리가 우리의 중재안을 내놓았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차후 우리는 북·미간 더욱더 강력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즉 우리는 북한과 미국의 지루한 줄다리기에서 그저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심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