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
우산을 펴야 할지 망설일 정도로 작고 힘없는 물방울들이라 비인지 안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그런 날이었어. 하지만, 발아래에서 복슬복슬한 흙 내음이 전해진 걸 보면 비가 내린 건 틀림없었나 봐.
벚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때 이르게 지는 꽃잎들이 바람과 비에 흩날리며 꽃비까지 내리던 그런 을씨년스러운 날이었지? 그때 말이야. 쌀쌀한 봄날이었지만 따뜻한 기운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너도 같은 느낌이었을까?
인디밴드의 현대적이면서도 느린 템포의 리듬감이 주는 긴장감, 아! 우산 아래 팔짱을 끼고 안갯속을 자박자박 거닐었었어. 그래, 그 당시 우리는 서른 초반의 멋스러운 여자들. 함께 좋은 음악을 공유하고, 새로 알게 된 차와 커피 맛에 대한 정보를 뽐내고 싶어 했고 시국을 걱정했으며, 아이들 교육에도 진보적인 생각들을 함께 나누었잖아. 그날의 안갯속만큼이나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미래였지만 우린 그날의 몽환적인 분위기 자체를 즐겼던 것 같아. 우리의 목적지는 아마 상당산성이었지? 하지만, 산성의 치미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었어.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친구야, 새로 시작하려는 작은 가게가 잘 되기를 바란다. 어느 날 문득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이 그림이 너를 미소 짓게 하면 좋겠다. 2월,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릴 때 내가 한 달음에 달려갈게. 너를 닮은 하얀 봄맞이꽃이 피는 4월의 어느 따스한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은, 이제 너의 곁에 두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