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의 희망이 공존하는 곳, 습지

[열린세상] 김정섭(환경예술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집 근처에 습지 한두 군데 정도는 어디에나 있었다. 어린 시절 흔했던 동네 개울이나 연못 등은 발전과 개발 그리고 오염, 위험성의 이유로 우리 주변에서 급격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습지의 중요성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이, 생물종다양성과 수자원의 보존 이 두 가지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그 존재가치는 인정받을 수 있다.

반갑게도 이제 우리 주변에선 습지 보전의 필요와 정당성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한편,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습지를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환경부에서는 강원도 영월군에 소재한 ‘한반도습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람사르습지 등록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임진강 하구습지와 제주도의 습지생태계인 물찻오름과 숨은물벵디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뒤 람사르 협약 습지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습지의 생물학적인 가치는 물론 생태관광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고 세계의 흐름에 발맞추려 하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습지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나 인간의 접근을 인위적으로 금지해 생태계를 유지하거나 복원시키는 방법으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곳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무엇보다도 생태적 중요성을 국내· 외적으로 주목을 받는 곳이 바로 천혜의 자연보고인 DMZ이다.

DMZ는 한국전쟁이 낳은 또 다른 상징으로 60년이란 세월을 인간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남아 있다. 엄격한 인간의 출입통제와 개발제한은 훼손된 환경의 자연복원 과정을 통해 자연 스스로 습지와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어 냈고, 대기나 토양, 수질 또한 한반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청정지역이다. 최근 부분적인 생태계 조사만으로도 약 27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것이 밝혀질 정도로 희귀 동식물들이 풍부한 생물종다양성의 보고로서 주목받고 있다.

남북이 갈라진 비극이 낳은 DMZ는 오히려 자연에는 평화와 공존의 상징이 돼버렸다. 이러한 생태습지들의 지정사업 활동은 추후 습지의 보전, 관리와 생태·문화관광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 자연학습지로서의 교육시설의 확충,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 또한 인간이 추진하는 또 하나의 개발로서 또 다른 훼손의 우려를 지니게 된다. 단지 희귀하고 멋들어진 자연환경의 일부로서 인식된 습지가 아닌 그 가치와 인식을 이해하며, 철저하고 지속적인 관리와 모니터링이 포함된 습지의 보전과 개발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인간의 고향이다. 인간은 자연과 떨어져 살 수가 없으며 망가진 자연환경 속에서의 인간은 자연적인 본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습지를 생태학적·문화적·교육적·경제적 가치로서 이해하기 이전에 습지의 정의를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습지는 다양한 생물의 보금자리이며, 독특한 생태계이자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이다.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노력, 그리고 미래의 희망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자연의 적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다. 습지를 널리 알리고 개발하는 것보다도 그 모습 그대로 보전하고 복원하는 데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