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자연 속에 살지만 그 삶이 쉬어야 되는 경우에 반드시 벽을 찾는다. 벽이 있을 때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가옥의 구조는 기둥을 중심으로 한 벽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벽을 만들어 외부와의 출입을 통제 하지만 출입을 위해 한 켠에 문을 만들고 공기의 소통을 위해 창을 만든다. 여기에 붙여 놓을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이 있다면 이때 벽은 인간을 위한 좋은 쉼의 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벽은 이처럼 인간에게 유익한 공간인 셈이다. 그러나 요즘 일어나는 여러 문제는 바로 인간에게 가장 유익하도록 만들어 놓은 벽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인간의 자유를 위한 벽이 인간의 고통을 위한 벽으로 자리하기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공동체로서의 벽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필요를 과도하게 주장하면 고립되게 된다. 그래서 그 벽을 소통하려고 국가 간에도 협정을 맺어 관계가 편리하도록 출입문을 열어 두는 것이다.
가정에도 벽은 필요하다. 그러나 창문이 막힌 가정은 공기가 안 통해 답답하듯 의사소통이 불편해서 고통스러워진다. 청소년들에게도 자기영역의 벽은 필요하다. 그 가치를 찾아 그 안에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 멋진 성취의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의 현실은 나의 그림보다는 벽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게 된다. 벽은 개인의 한계를 결정짓는 크기에 불과한 것인데 그 벽을 위기로 느껴 다시 자기들의 벽을 만드는 작업이 새로운 갈등구조로 나타난다.
벽은 필요한 가치로 존재하고 있기에 넘든지, 뚫든지, 정 안되면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도전을 싫어하는 이들은 벽을 피하기만 한다. 벽은 피하거나 피해지는 사물이 아니라 존재하는 사실이기에 거기에 문을 내어 출입하고 창을 내어 경치를 보고 숨을 쉬며 나의 작품을 걸어 자부심을 갖는 멋진 공간이어야 한다.
벽이 있어 두려워하는 이가 있다면 그 벽을 나의 기념 액자틀로 여겨보라. 그것을 뒷 배경으로 내 인생의 멋짐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벽이 있어 답답한 이가 있다면 그 벽에 조그만 점을 하나 찍어 놓으라. 그리고 그것을 내 인생의 스위치로 삼으라. 벽 안에 있는 당신이 그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벽은 문이 되고 그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세상의 맑은 공기가 들어오는 창이 열리고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세상은 나를 위해 돌아간다고 생각하라. 그러므로 벽은 나를 가두는 곳이 아니라 세상을 여는 창이 되는 것이다. 비록 작은 점하나 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