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 여행길에서 인상적인 것은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다닌다는 것이다. 언젠가 높은 설산의 어디쯤 인적 닿지 않아 온전히 자기 빛깔들을 발산하며, 눈밭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이끼들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며 해맑게 웃던 그녀. 지독한 감기의 끝이라 눈은 퀭하고 입술도 말라서 힘들게 아침 산책을 하던 내게 정돈되지 못한 머리칼과 무표정한 모습이 좋다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면서 깔깔대던 그녀의 웃음소리.
그렇게 유쾌하고 호탕한 그녀가 슬픔에 빠졌다.
검은색 스키니진에 헐렁한 스웨터를 걸치고 검은 머리 미풍에 흔들리며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희노애락애오욕, 가슴아래에서 칠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저 바라보라고 했던가!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지금, 여기 나의 모습을 직시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감정을 컨트롤하는 뇌의 어느 부위를 잠깐 덜어내고 ‘허(虛)’, ‘공(空)’의 상태로 존재하라는 말인가? 그도 아니면, 감정들을 곱씹으면서 인과관계를 차근차근 따져 실체를 밝혀보라는 말인가?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의 일이므로.
친구의 아픔이 전해오는 것만 같다. 애잔한 그 미소가 마음을 움직였다. 안개와 같은 회색빛 그녀의 시간들이 이제 노랗게 파랗게, 주홍빛으로 보랏빛으로 선명하게 다가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