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봄, 시민의 마음에서부터 온다

[김훈동 칼럼]

▲ 수원예총 회장
경칩도 지났다. 새움이 돋는 3월이다. 겨울이 동여맨 매듭에서 풀려난 나무들이 연둣빛 새순을 밀어 올리고 있다. 완연한 봄이 찾아드는 듯하다. 골목 어귀 담가 매화도 겨우내 감추었던 속살을 드러낸다. 이제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털고 새봄의 기운을 입히고 새 길을 열어가자. 누군가 내게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기만 하면 그 길은 열릴 까닭이 없다. 내가 한 발 먼저 내딛는 발걸음은 그 길을 소통과 우정이라는 신작로를 만든다. 상대방이 먼저여야 한다는 이기심은 불통과 무관심이라는 비포장도로를 만든다. ‘나의 갈길’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갈 곳을 몰라 서성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원을 찾는 이들이 산뜻한 봄 향내를 맞게 주변을 말끔하게 단장해야 하겠다. 이리저리 하늘을 휘저으며 뻗은 가로수를 가지런하게 잘라주고, 겨우내 쌓였던 거리 곳곳의 오물 찌꺼기를 깨끗하게 씻어내는 일도 필요하다. 도로변 건물 외벽도 물청소하고, 상가에 내걸린 간판도 봄을 입히자. 세계문화유산 화성성곽도, 그걸 알리는 안내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깔끔하게 봄단장을 하자. 낡은 것과 새것이 범벅되어 갈피를 못 잡게 되면 좋은 이미지에 혼란을 빚어내기 쉽다. 늘 먹던 음식도 그릇을 바꾸면 새 맛이 난다. 늘 보던 곳도 주위환경이 달라지면 마음과 눈에 모두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수원의 봄은 어디서부터 올까? 광교산 형제봉에서 이는 싱그러운 바람에서일까. 팔달산에 붉게 타는 진달래꽃에서일까. 5.4km에 걸친 수원화성을 순례하는 관광객의 발끝에서일까. 그도 저도 아니라 110만 시민의 마음속에서 이는 바람에서 일게다. 봄을 맞는 마음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마음의 눈이 깨끗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듯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자.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현실이 기쁨보다 무거운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새봄이 되어야 하겠다. 꽃이 피어나는 새봄은 꿈이자 희망이다. 꿈과 희망은 힘겨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넉넉한 힘을 선물한다. 봄은 시작이다. 학생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어 새 친구, 새 선생님을 맞으며 새 책과 새 공책에 꿈과 희망을 담는다. 봄은 분명 우리들 삶에 촉촉한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현대문명이 저질러 놓은 공해 때문에 봄이 되어도 자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소리 없는 봄을 노래한 시인도 있다. 화성행궁에 자리한 몇백 년 묵어서 구멍이 뚫린 고목에도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움이 돋아난다. 봄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새봄의 맥박을 느낄 수 있는 ‘소리 있는 봄’을 기원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그의 수상록에서 ‘불행이란 그 태반이 인생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결국 행복이란 그 태반이 인생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서 비롯된다. 내가 불행하다는 것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는 까닭이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일도, 분수와 처지에 맞는 꿈을 소망하는 것도 내 마음에 봄을 입히는 일 가운데 하나다.

예전에는 봄맞이 대청소날이 있었다. 누구든 빗자루를 들고 상가가 즐비한 대로변에서부터 주택가의 뒷골목을 비질하여 도심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유료 쓰레기봉투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후부터는 내 집 안 청소도 이웃집 경계선에서 멈춰질 정도로 야박해졌다. 니체는 ‘문 앞에서 청소하는 것이 애국심의 초보’라고 했다. 공생(共生)의 꽃을 피워가야 할 시민의식이 아쉽다. 이웃 간의 막힌 담을 헐어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은 단순히 도시의 주민이란 좁은 뜻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민은 독립된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시민정신이 중요한 이유다. 정신은 무형의 힘이고 애향정신이다. 애향은 결코 거창하거나 요란스런 것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정신이다. 정신은 자기다. 좋은 정신을 지니면서 살아가는 일이 시민의 바른 자세다. 새로움의 봄날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수원시민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