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의 그림이 있는 풍경 18] 길위에서-잠시쉬다

▲ 길위에서-잠시쉬다/53.33.5/Acrylic on Canvas/ 2011
‘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곱 살 난 딸아이는 혼자 어떤 작업을 하는지 문을 닫은 채 몇 시간째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시간을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에 방문을 잘 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딸의 방을 엿보게 되었다. 무엇을 만드는지 인기척에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본드로 붙이고 색종이를 자르고 분주한 손놀림과 진지한 얼굴. 아, 몰…. 한 가지의 일을 끝내더니 혼자 인형놀이를 한다. 일인다역으로 한참을 종알거리더니 또다시 공간을 옮겨 색칠놀이를 하고 있다. 살며시 문을 닫고 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딸이 내게 오더니 심심하다고 같이 놀자 한다. 지금까지 몇 시간을 쉬지도 않더니 방문을 열자마자 심심하다고 하는 것이다.

‘쉼’은 휴식을 말할 터인데, 그렇다면 딸에게 쉼의 시간은 방안에서의 시간일까? 방 밖에서의 시간일까? 어른들의 시선으로 볼 때는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는 공간인 방 안은 작업하는 시간이고, 방 밖의 시간은 쉬는 시간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딸은 ‘쉼’의 시간을 심심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딸에게는 몰입하여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던 그 순간에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쉼’은 긍정적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가. 나에게 이런 일은 무엇일까? 두 가지 낱말이 떠오른다. 그림. 여행.
 
붓을 들고 내 머릿속의 어떤 이미지나 관념을 함축적으로 평면에 재구성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고민의 시간 속에 어떤 결과로서의 그림 한 점이 완성되는 순간 이른바 ‘창작의 기쁨’이 와락 안겨오고 이 순간의 짜릿함 강도는 카타르시스를 능가하는 그 무엇이다.

머릿속의 데이터가 고갈되었다는 생각이 들거나 새로운 어떤 주제에 몰입될 때 나는 운전대를 잡고 어디론가 떠난다. 꽃피고 물 맑은 우리나라 산천이 어디를 가나 무에 그리 다르겠느냐마는 정작 예술적 영감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받을 때가 많다. 하여 떠나고자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말마다 ‘떠남’을 계획하는 나에게 남편은 좀 쉬라고 한다. 서방님! 어찌하오리오. 저에게는 ‘떠남’이 ‘쉼’ 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