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가득 찬 늦은 8월의 어느 날이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태풍이 지나간 흔적과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린 사람들 삶의 상처들을 내보내고 있었고 어느새 나는 유년의 어느 한때로 걸어가고 있었다.
태풍을 유난히 좋아했다. 주위보다 지대가 높았던 우리 집은 물난리가 나기 시작하면 삼삼오오로 보따리를 들고 모여드는 대피소 역할을 했다. 친구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짓궂게 굴던 동네 오빠가 자연의 힘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이 고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더 설레게 하는 것은 큰길 건너 둑 위에 올라가서 보는 누런 강물의 넘실거림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세찬 물줄기가 넓은 강폭을 가득 메우며 내려가는 풍광은 가슴속의 답답한 무엇인가를 한숨에 날려버리는 것 같아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태풍의 묘미 중에 단연 최고는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의 풍광이다. 맑게 갠 하늘,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의 눈 부심과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이 상쾌한 대기를 깊이 들이마시면 맛있는 산소가 폐까지 전해오는 느낌이다.
유년의 그날 이후, 태풍이 불 때면 자꾸만 밖으로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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