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홍수가 흘러넘치는 곳에서 우물하나가 쓸모 있는 그만큼
오랜만에 '경전'이라는 걸 읽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아침형 인간'....두배로 잘 사는 법... 하나같이 어떻게 하면 인정받고 효율적으로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요령을 알려주고 나태한 나를 채찍질하는 책들의 홍수속에서 '사방에 홍수가 흘러넘치는 곳에서 우물하나가 쓸모 있는 그만큼' 바가바드기타는 내게로 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결코 종교적이지 않은, 늘 '이유없이 한 사물에 매달려 그것이 모든 것인 줄 알고 참된 본질을 놓치는 타마스(암흑)'의 나, '무엇을 하든 그 일에 집착을 하면서 또한 자기가 하는 일에서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찾지 못하는' 미혹에 빠져 있던 내가 홍수 가운데 맑은 샘물을 찾은 듯 되풀이 읽었다. 그리고 늦은 밤 잠자리에 들어서는, 끝없는 집착에 빠져 남과 나를 괴롭게 했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라는 생각을 품고서 결과를 기대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써서 하는 라자스(격정)'의 인간 이기도 한 나는 말 그대로 '하루 24시간에서 30분은 자신의 아트만(자아)을 속이는 데 쓰고 나머지 23시간 30분은 자기 몸한테 바치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한양대와 홍익대를 나온 부모님들은 장남인 나에게 대학원도 다니
고 외국으로 유학도 갈 수 있을거라 하셨지만 단 한번도 부모님들은 아들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친적 없고, 내가 무엇을 전공하고 어떤 공부를 하는지 묻지 않으셨다. 오로지 무조건적인 뒷바라지와 대가없는 부모로서의 의무만을 다 하셨다. 부모님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배우고 좋은 조건에서 성장하리라고 믿었던 나는 부모님께서 어떻게 했던가? 늘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라며 다그쳤고 내 욕심에 따라주지않는 학교성적에 대해서는 격려를 해주었다. 나는 진로에 대해 오직 일반통행을 했으며 당시에도 대학진학만이 지상목표이고 전부인양 다른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길을위해 전념해왔다. 지난 몇 년은 말 그대로 아수라의 세월이었다. 열가지중 단 한가지의 결점, 공부에만 빠져 남들 놀때 어울리지않고 혼자있는것을 좋아 한것이 불행의 근원이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는 학우들에게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른 것일까?
'자기 중심적인 요소가 없어야 하고 그 행위에서 아무런 이익도 얻는게 없어야' 하는데 나는 나의 모든 행위에 대한 열매를 원했고 그 집착의 결과는 상처뿐이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을 보면서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은 일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충실한 결단력과 에너지로 훨씬 열심히 일한다'는 경구를 이해했다. 모든 집착을 버리고 성공과 실패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내 몫으로 태어난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검프의 행위는 성스럽기까지 했다.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때부터 그는 매순간에 충실했고 한번도 결과에 대해 의심하거나 원망하지않았다. 반면에 나의 하루하루는 어떠했던가? 매순간 나는 고민하고 결과를 상상하고 계획을 세울뿐이었다. 나의 꿈은 마흔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흔들리고 있다. 늘 이것저것 열심히 하는 듯 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날마다 일기쓰기, 아침마다 등산하기, 끼니때마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식사준비해주기, 외국어 공부하기, 독서하기, 메모하기, 늘 계획과 생각은 있지만 일주일이상 계속되어본 것이 없다. 남들이 보기엔 늘 바쁘고 활기차보이고 어렸을때부터 시작한 공부에 열심인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 실속도 없는 '타마스(암흑)의 의지를 가진, 무감각한 사람으로 잠에 곯아떨어지고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절망하고 자기를 속이는' 한심한 내가 있을 뿐이다!
'육체의 행복은 순전히 욕망의 충족에서 오므로 일시적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잠에 대해 구구한 변명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나의 유일한 사치생활이요 내 삶의 기쁨이 바로 이것, 아침잠이라고 하면서 나머지 깨어있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자고 하지만 이미 한 낮의 절반은 지나가버린 후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삿트바(명성), 라자스(격정), 타마스(암흑) 이 세가지 구나들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지상에도 없고 하늘의 천신들 가운데도 없다' 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위안이 되는지! 세가지 구나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끝없이 애쓰라는 복음이다.
아직도 신앙에 선뜻 발을 담그지 못하는 나에게 이 책은 종교란 무엇인가 다시한번 관심을 갖게 했다. 어느 종파의 색다른 견해가 아닌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순수한 윤리 그것만을 가르친 책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육신만으로 사는 데 아무 의미가 없다면 남을 섬기는 일에, 신께 기도하는 삶을 사는 데 육신을 이용하라. 우리에게 그런 권면을 하는 이들은 무지한 이들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안 사람들이며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정말 그럴까? 냉담중인 내게 성당교우들이 하던말과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그 동안은 건성으로 들어넘겼는데 웬지 이 구절에선 보편적인 진리가 들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쨋거나 앞으로 내 삶의 좌우명은 좀 바뀌어야 될 것 같다.
'세상의 하인으로 살아라. 그 이상의 일은 너의 능력 밖에 있다.'
오랜만에 '경전'이라는 걸 읽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아침형 인간'....두배로 잘 사는 법... 하나같이 어떻게 하면 인정받고 효율적으로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요령을 알려주고 나태한 나를 채찍질하는 책들의 홍수속에서 '사방에 홍수가 흘러넘치는 곳에서 우물하나가 쓸모 있는 그만큼' 바가바드기타는 내게로 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결코 종교적이지 않은, 늘 '이유없이 한 사물에 매달려 그것이 모든 것인 줄 알고 참된 본질을 놓치는 타마스(암흑)'의 나, '무엇을 하든 그 일에 집착을 하면서 또한 자기가 하는 일에서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찾지 못하는' 미혹에 빠져 있던 내가 홍수 가운데 맑은 샘물을 찾은 듯 되풀이 읽었다. 그리고 늦은 밤 잠자리에 들어서는, 끝없는 집착에 빠져 남과 나를 괴롭게 했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라는 생각을 품고서 결과를 기대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써서 하는 라자스(격정)'의 인간 이기도 한 나는 말 그대로 '하루 24시간에서 30분은 자신의 아트만(자아)을 속이는 데 쓰고 나머지 23시간 30분은 자기 몸한테 바치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한양대와 홍익대를 나온 부모님들은 장남인 나에게 대학원도 다니
고 외국으로 유학도 갈 수 있을거라 하셨지만 단 한번도 부모님들은 아들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친적 없고, 내가 무엇을 전공하고 어떤 공부를 하는지 묻지 않으셨다. 오로지 무조건적인 뒷바라지와 대가없는 부모로서의 의무만을 다 하셨다. 부모님들처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배우고 좋은 조건에서 성장하리라고 믿었던 나는 부모님께서 어떻게 했던가? 늘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라며 다그쳤고 내 욕심에 따라주지않는 학교성적에 대해서는 격려를 해주었다. 나는 진로에 대해 오직 일반통행을 했으며 당시에도 대학진학만이 지상목표이고 전부인양 다른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길을위해 전념해왔다. 지난 몇 년은 말 그대로 아수라의 세월이었다. 열가지중 단 한가지의 결점, 공부에만 빠져 남들 놀때 어울리지않고 혼자있는것을 좋아 한것이 불행의 근원이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는 학우들에게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른 것일까?
'자기 중심적인 요소가 없어야 하고 그 행위에서 아무런 이익도 얻는게 없어야' 하는데 나는 나의 모든 행위에 대한 열매를 원했고 그 집착의 결과는 상처뿐이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을 보면서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은 일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충실한 결단력과 에너지로 훨씬 열심히 일한다'는 경구를 이해했다. 모든 집착을 버리고 성공과 실패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내 몫으로 태어난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검프의 행위는 성스럽기까지 했다.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때부터 그는 매순간에 충실했고 한번도 결과에 대해 의심하거나 원망하지않았다. 반면에 나의 하루하루는 어떠했던가? 매순간 나는 고민하고 결과를 상상하고 계획을 세울뿐이었다. 나의 꿈은 마흔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흔들리고 있다. 늘 이것저것 열심히 하는 듯 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날마다 일기쓰기, 아침마다 등산하기, 끼니때마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식사준비해주기, 외국어 공부하기, 독서하기, 메모하기, 늘 계획과 생각은 있지만 일주일이상 계속되어본 것이 없다. 남들이 보기엔 늘 바쁘고 활기차보이고 어렸을때부터 시작한 공부에 열심인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 실속도 없는 '타마스(암흑)의 의지를 가진, 무감각한 사람으로 잠에 곯아떨어지고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절망하고 자기를 속이는' 한심한 내가 있을 뿐이다!
'육체의 행복은 순전히 욕망의 충족에서 오므로 일시적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잠에 대해 구구한 변명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나의 유일한 사치생활이요 내 삶의 기쁨이 바로 이것, 아침잠이라고 하면서 나머지 깨어있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자고 하지만 이미 한 낮의 절반은 지나가버린 후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삿트바(명성), 라자스(격정), 타마스(암흑) 이 세가지 구나들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지상에도 없고 하늘의 천신들 가운데도 없다' 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위안이 되는지! 세가지 구나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끝없이 애쓰라는 복음이다.
아직도 신앙에 선뜻 발을 담그지 못하는 나에게 이 책은 종교란 무엇인가 다시한번 관심을 갖게 했다. 어느 종파의 색다른 견해가 아닌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순수한 윤리 그것만을 가르친 책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육신만으로 사는 데 아무 의미가 없다면 남을 섬기는 일에, 신께 기도하는 삶을 사는 데 육신을 이용하라. 우리에게 그런 권면을 하는 이들은 무지한 이들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안 사람들이며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정말 그럴까? 냉담중인 내게 성당교우들이 하던말과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그 동안은 건성으로 들어넘겼는데 웬지 이 구절에선 보편적인 진리가 들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쨋거나 앞으로 내 삶의 좌우명은 좀 바뀌어야 될 것 같다.
'세상의 하인으로 살아라. 그 이상의 일은 너의 능력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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