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임시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
상해임시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여성운동가인 김마리아(1892∼1944)의 전기. ‘실력양성이 독립운동’이라고 주장했던 김마리아는 기독교와 근대학문을 통해 신교육의 중요석을 인식,체득했으며 특히 수천 년동안 지적 활동이 박탈됐던 여성들을 교육하는 것을 독립국가로 가는 중요 과제로 여겼다.
3·1운동 당시에는 모교인 정신여학교에서 비밀리에 결성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장으로,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여전도회전국연합회장으로 활동하며 두 차례 체포되기도 했다.
상하이와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32년 귀국해 조국독립을 위해 활동했으나 1944년 3월,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1960년대에 쓰여진 전기 ‘김마리아’에 비해 이번 책은 중국 망명 이후 부분에 대한 자료를 충실히 보충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영롱한 빛을 가지고 있는 값진 보석에는 인위적인 덧칠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며 오랜 기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 전기를 썼음을 밝히고 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여성운동가인 김마리아(1892∼1944)의 전기. ‘실력양성이 독립운동’이라고 주장했던 김마리아는 기독교와 근대학문을 통해 신교육의 중요석을 인식,체득했으며 특히 수천 년동안 지적 활동이 박탈됐던 여성들을 교육하는 것을 독립국가로 가는 중요 과제로 여겼다.
3·1운동 당시에는 모교인 정신여학교에서 비밀리에 결성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장으로,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여전도회전국연합회장으로 활동하며 두 차례 체포되기도 했다.
상하이와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32년 귀국해 조국독립을 위해 활동했으나 1944년 3월,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1960년대에 쓰여진 전기 ‘김마리아’에 비해 이번 책은 중국 망명 이후 부분에 대한 자료를 충실히 보충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영롱한 빛을 가지고 있는 값진 보석에는 인위적인 덧칠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며 오랜 기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 전기를 썼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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