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대회기간이 4월 27일부터 10월 31일까지 6개월 이상에 걸쳐 개최되었다. 다음으로 미국선수단이 개최식 때 입장하며 미국 국기가 게양되지 않았다고 영국의 국왕인 에드워드 7세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의식을 거절하며 본부석을 지나쳤다.
세 번째 줄다리기경기에서 말썽이 일어났다. 당시에는 줄다리기 경기가 있었는데 한 팀이 8명으로 미국선수들은 보통의 스포츠화를 신었는데 반해 리버풀의 경찰관으로 구성된 영국팀은 바닥에 스파이크를 박은 부츠를 신고 출전하여 미국팀은 스포츠화로 바꿀 것을 요구하였으나 영국인만으로 구성된 심판진은 영국경관의 일상화이므로 상관없다며 미국의 항의를 일축했다. 결국 줄다리기의 메달 3개는 모두 영국에 돌아가고 말았다.
네 번째 이야기는 육상 400m 경기에서 나왔다. 미국의 카펜터와 로빈스가 각각 1위와 2위 그리고 영국의 홀스웰이 3위로 골인하자 영국 심판은 카펜터 선수가 홀스웰을 방해했다며 카펜터의 실격을 선언 2일 후에 3명의 선수가 다시 경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미국이 그러한 결정에 불복하며 재경기를 거부하자 영국의 홀스웰 선수 혼자 뛰어 우승했는데 올림픽 사상 2위와 3위가 없는 진기한 기록을 남겼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마라톤에서의 실격사건이다. 이 대회의 마라톤 코스는 윈저성에서 메인 스타디움까지의 편도 26마일385야드로 오늘날의 거리와 똑같았다. 그런데 1회 아테네대회 때는 40km, 2회 파리대회 때는 40.26km, 3회 세인트루이스 대회 때는 40km로 대회 때마다 달랐다. 그런데 런던대회에서 42.195km로 된 것은 그 사연이 있다. 안 메린공주가 출발상황을 황실의 어린이들이 궁의 창을 통해 볼 수 있도록 요청하는 바람에 조금 늘리게 된 것이다. 이 대회에서 고온 다습하여 낙오하는 선수가 속출하는 가운데 그런 악조건을 이겨내고 골인지점인 메인 스타디움에 제일 먼저 모습을 나타낸 것은 19번 번호를 단 이탈리아의 도란도 피메트리였다. 더위에 지쳐 비틀거리는 도란도는 트랙을 반 바퀴 도는 사이에 5번이나 넘어지는 등 독자적으로 골인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자 장내에서는 “선수를 도와주라”는 말과 “도와주면 실격이다”라는 소리가 뒤엉켜 소란스러워졌고 비참한 도란도의 모습을 본 몇 명의 임원이 도란도를 부추겨 골인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어서 미국의 헤이즈가 2위로 골인하였는데 1위로 들어온 도란도가 임원의 도움을 받아 골인한 사실을 안 헤이즈가 항의하자 도란도는 실격되고 헤이즈가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355야드는 선수들이 메이스타디움에 들어와 뛰어야 할 거리, 그러니까 355야드가 더 보태지지 않았더라면 도란도는 임원의 도움 필요없이 우승했으리라는 것이 후입담이었는데 결국 도란도는 메리공주의 욕심으로 인한 희생자가 된 셈이 되었다. 도란도의 실격을 안타까이 여긴 알렉산드라 황태후는 경기 6일 후 도란도에게 특별 금컵을 수여하여 위로하였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여자선수의 참가가 눈에 띌 정도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런던대회에는 체조, 테니스, 피겨스케이팅에 36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일곱 번째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수영경기가 풀에서 실시 되었다는 것이다. 1회 그리스 아테네대회 때는 바다에서, 2회 프랑스 파리대회 때는 세느강에서, 3회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회 때는 인공호수에서 실시되었지만 이 대회에서는 메인 스타디움 내 필드서 100m 짜리 풀을 만들어 경기를 시행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50m짜리 풀에서 경기를 하게 된 것은 1924년 제5회 파리대회 때부터였다.
아무튼 제4회 런던올림픽은 앞서 열린 세 차례의 올림픽대회가 박람회의 부속대회로 전락한 것을 쿠베르탱이 생각한 “본래의 올림픽으로 환원하는 대회”로 평가받는 대회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22개국에서 2035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22개 경기의 109종목에서 기량을 겨루었는데 영국이 절반 이상의 56종목에서 우승하여 대회주최국의 체면을 세웠다. 이어 1945년의 14회 런던올림픽을 주최하고 다시 세 번째 2012년 런던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